이틀 전 뉴햄프셔 주 한 타운홀 미팅의 분위기는 격앙된 감정들이 부딪치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뉴타운 난사사건에서 살해당한 샌디훅 초등학교 교장의 딸 에리카 래퍼티(27)가 2주 전 연방상원에서 총기구매 시 신원조회를 확대하는 총기규제법안에 반대한 공화당의 켈리 에이어트 의원을 향해 물었다.
“당신은 신원조회 확대로 손해를 입을 총기상들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초등학교 복도에서 총에 맞아 쓰러진 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부담은 그것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부끄러운 줄 알라”는 비난 사인과 “땡큐, 켈리”라는 지지 응원이 야유와 박수로 대립한 속에서 에이어트의 참모들이 질문 내용을 미리 체크하는 아슬아슬한 분위기…“질문은 규제하는 당신이 왜 총기규제는 안하려고 하는가”라는 한 남자의 고함에 박수갈채가 터지기도 했다.
같은 날 백악관, 집권 2기 100일을 맞은 오바마의 짤막한 기자회견 중 ABC 뉴스의 조나단 칼 기자가 대통령에게 대놓고 물었다. “의회에서 당신의 나머지 어젠다를 성사시킬 수 있는 힘(Juice)을 아직 갖고 있는가?” 공화당뿐 아니라 자당인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영향력이 약해진 레임덕 증상을 찔러보는 질문의 중심 배경은 몇 번의 물 타기를 거듭하고도 민주당이 장악한 상원에서조차 무산된 신원조회 총기규제 법안이었다.
신원조회 확대법안은 오바마가 2기 초의 정치자산을 상당부분 쏟아 부으며 감정적으로 몰입했던 과제였다. 6~7세 어린 초등학생 20명이 선생님들과 교실에서 떼죽음을 당한 ‘샌디훅 참사’라는 초강력 모멘텀이 있었고 여론의 90%가 지지하는 이슈였으며 양극화된 워싱턴에서 양당의 두 의원이 공동작성한 초당적 합의안이었다. 내용도 극히 합리적이었다. 총기소유권 침해는 근처에도 안 갔고 대량학살을 가능케 하는 공격용 무기 및 대용량 탄창 금지도 아예 빼버렸다. 그저 범죄자나 정신질환자가 총을 사지 못하도록 신원조회를 총기쇼나 온라인 거래까지 확대하자는 첫 단계의 규제안이었다. 제 역할에 충실한 의회라면 절대 무산시킬 수 없는 여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도 45명이나 되는 연방 상원의원들이 그 ‘절대적인’ 총기권리에 흠집이 생긴다는 구실로 거부한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총기로비의 승리였고 오바마의 참패였다. 그러나 인도적으로는 승자 없는 한판이었다. USA투데이의 지적처럼 샌디훅을 비롯한 총기희생자들의 패배였으며 무엇보다 공공안전을 지키려는 상식과 도덕의 패배였다.
물론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2주간 전열을 재정비한 총기규제 그룹들이 이번 주 들어 반격에 돌입했다. 연방에서 각 주로 투쟁의 전선도 옮겨가고 있다. 이어지는 타운홀 미팅과 찬반 광고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총기규제 전국투쟁의 그라운드 제로로 떠오른 뉴햄프셔도 새로운 전선 중 하나다. 오늘은 다른 반대의원인 애리조나 주 제프 플레이크의 피닉스 사무실 앞에서 시위가 예정되어 있다.
규제법안도 죽지는 않았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절차상 반대투표를 던져놓았기 때문에 이번 회기 중 언제든지 재상정할 수 있다. 신원조회안의 공동작성자인 조 맨신 의원은 조속한 상원 재상정을 다짐하고 있다. 목표는 8월 휴회 전 상원 본회의 표결이다. ‘미션 임파서블’ 까지는 아니라 해도 전망은 솔직히 어둡다. 우선 긴급 사안들이 줄줄이 대기 중인 빡빡한 의회일정에 방금 무산된 어젠다가 다시 비집고 들어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패배의 원인도 해결하지 못한 상태다.
상원 내 총기규제안에 대한 반대가 가시화 된 것은 3월말 2명의 초선 티파티 의원인 유타의 마이크 리와 텍사스의 테드 크루즈가 해리 리드에게 필리버스터 위협 서한을 발송하면서다. 처음에 동조자 모으기가 쉽지 않았던 반대파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전국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다. 총기협회는 선거의 해마다 총기협회 월간잡지 11월호에 특집부록을 발행한다. 수백만 회원들은 주, 연방의원부터 대통령까지 각급 선거 모든 후보에 대해 A,B,C…등급이 매겨진 그 부록을 충실히 ‘학습’한 후 투표소로 향한다.
지난 4월 초 총기협회는 연방 상원의원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 “NRA는 수정헌법 2조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안에도 반대할 것이다…모든 총기법안에 대한 여러분의 투표는 앞으로 NRA의 후보평가에 고려될 것이다” 반대표를 던진 46명 중 이 편지에 겁을 먹고 입장을 바꾼 의원이 15명이나 된다는 루머도 흘러나왔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과 짐 브래디 백악관 대변인이 피격당한 후 의회가 총기규제안 브래디법을 통과시킨 것은 몇 번의 좌절을 극복하며 12년이나 지난 1993년이었다. ‘샌디 훅’의 총기규제안도 결국은 통과될 것이다. 총기협회 못지않게 자금도 확보하고 지지자도 늘리고 조직도 강화하면서 하나의 ‘무브먼트’로 정착된다면 의원들로 하여금 규제강화 여론이 두려워 반대표를 던지지 못하게 하는 힘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일까.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날이 올 때까지는 미국에선 ‘샌디훅의 참사’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 여전히 정신병자와 중범죄자도 손쉽게 반자동소총을 살 수 있고, 여전히 초등학교 교실과 영화관이 대량학살 현장이 될 수 있으며, 여전히 매일 전국 어디에선가 90명의 생명이 총에 맞아 스러지는 곳…어제도 다섯 살 어린 오빠의 총에 두 살짜리 아기 여동생이 숨졌다는 어처구니없지만 새롭지 않은 뉴스가 보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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