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사회 연륜이 오래된 중국계 커뮤니티에서 현재 가장 두드러진 정치인 한 명을 꼽으라면 게리 락을 들 수 있다. 예일대와 보스턴 법대를 나와 검사로 활동하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워싱턴주 주지사로 재직한 그는 미국 본토 최초의 아시아계 주지사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연방 상무장관을 지낸 뒤 현재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나라였던 중국에서 미국 대사를 하고 있다. 이민자의 자녀로 주지사와 장관에 대사 자리까지 올랐으니 롤 모델로 손색이 없다.
게리 락 대사는 중국계 3세로 여겨진다. 그의 할아버지는 189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와 워싱턴주에서 영어를 배우며 하우스보이로 일하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고, 이후 락 대사의 부모가 미국으로 다시 이민을 와 고생스런 생활을 하면서 그를 낳았다고 한다. 3세대라고는 하지만 어린 시절 집안이 어려워 저소득층 공공주택에 거주하며 유치원에 갈 때까지 영어는 한 마디도 못했다니 전형적인 이민 2세대나 마찬가지라 볼 수 있다.
전국 무대에 게리 락 대사가 있다면 LA에는 마이클 우 전 LA 시의원이 있었다. 163년 LA시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아시아계 시의원으로 활동했던 그도 중국계 이민자 2세다. 그의 부친은 1940년내 UCLA에 공부하러 온 유학파로, 락 대사의 부모처럼 어려운 환경은 아니었지만 청과상으로 자수성가한 뒤 성공한 은행가가 됐다. 마이클 우 전 의원은 UC 버클리 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을 전공하고 주 상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 33세의 나이에 최연소로 LA 시의회에 입성한 기록을 갖고 있다.
오는 5월21일 치러질 LA시 선거에서 제13지구 시의원직에 도전하고 있는 존 최 후보는 게리 락 대사나 마이클 우 전 의원과 닮은 곳이 많다. 부모를 따라 생후 10개월 때 미국에 온 최 후보는 UCLA 학부와 법대를 나와 변호사가 된 후 로펌에 안주하지 않고 정치 보좌관을 거쳐 공공부문에 투신했다. 최 후보는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이민 생활을 개척한 아시아계 가정에서 2세로 자란 점, 법대를 졸업했지만 공공봉사를 위해 공직을 택한 점이 게리 락 대사와 같다.
또 최 후보가 LA 카운티 노조연맹 경제개발 디렉터를 거쳐 LA시 공공정책위원회 커미셔너를 지내며 도시계획 분야에서 활동한 점은 도시계획학 전공으로 현재 칼폴리 포모나의 환경디자인대 학장을 맡고 있는 마이클 우 전 의원과 비슷하다. 우 전 의원의 LA 제13지구 시의원 당선이 33세 때였는데, 지금 33세인 존 최 후보가 같은 지역구에 도전하고 있는 점도 신기하게 들어맞는다.
존 최 후보의 이번 시의원직 도전은 개인적 성취도 중요하겠지만 한인사회로서도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그를 통해 한인사회가 사상 처음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LA 시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면 현재 전국 각주와 연방 차원에서 약진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한인 이민 차세대가 새로운 정치력 신장의 기회를 가질 무대로 올라서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존 최 후보나 또 다른 한인 2세ㆍ3세들이 ‘제2의 게리 락’이 될 수도 있고, 나아가 훗날 아직 중국계도 이루지 못한 미국의 연방상원의원이나 대통령의 꿈을 자라나는 한인 후세들이 품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꼭 1년전 이 칼럼에서 “내년이 한인 LA 시의원 탄생의 절호의 기회”라고 썼었는데, 이제 그 실현 여부를 가름하는 선거일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존 최 후보가 지난 예선에서 무난히 2위로 결선에 올랐지만, 그에게 이번 선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예선과는 달리 결선은 전혀 새로운 게임이고, 지역구에서 잔뼈가 굵어온 상대 후보의 지지 기반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 후보에 대한 한인들의 성원과 실질적인 후원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13지구에 살고 있는 한인 유권자라면 투표일에 빠짐없이 나가 투표를 해야 하겠고, 13지구 주민이 아니더라도 선거기금 후원이나 선거 자원봉사를 통해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절실하다. 최 후보 뿐 아니라 우리 후세들을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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