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열한 거리에서 황금알 낳는 거위로
▶ 뉴욕에 아삭 담백한 피자 최초 소개...식문화 발전 이바지
왁자지껄한 차이나타운 위쪽, 특히 보워리와 만나는 부근으로 접어들자 고소한 피자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이탈리아 국기가 여기저기 내걸린 가운데, 아시안이 드문 거리를 통과하며 또 다른 세계 속으로 접어듦을 실감했다. 이름하여 리틀 이태리(Little Italy), 말 그대로 ‘작은 이탈리아 커뮤니티’가 자리한 곳이다. 남북전쟁 이후 농부나 노동자로 대거 이주해온 이탈리아인들이 일대에 모여 살며 부락이 형성되었다.
19세기 중반 뉴욕에는 약 1만 명 정도의 이탈리아계가 거주했다고 전해진다. 그것이 불과 50년 만에 39만 명 수준까지 늘어났고 스프링 스트릿 일대에 펼쳐진 리틀 이태리는 이탈리아 문화의 거점으로 부상했다. 뉴욕 양키스의 명포수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명언을 남긴 요기 베라, 수많은 히트작을 남긴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프랜시스 코폴라, ‘범죄와의 전쟁’에 성공한 줄리아니 전 시장 등은 이들의 자랑스러운 후예다.
여전히 뉴욕에서 이탈리아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 현재도 약 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스태튼 아일랜드와 브루클린은 이들의 최대 집락촌으로 첫손에 꼽힌다. 하지만 많은 인구수에 더해 이탈리아계가 뉴욕에 남긴 문화 중 대표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역시 피자다. 멀베리 스트릿 일대에 거주하며 다수의 피자 가게를 운영하던 나폴리계는 뉴욕의 식문화 발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897년 이민 온 제나로 롬바르디가 스프링 스트릿 일대에 그로서리를 열고, 이후 그 직원인 안토니오 토토노 페로가 1905년 ‘미국의 첫 피자가게’를 연 것이 시초로 알려진다. 이곳에서 선보인 ‘종이에 싼 토마토 파이’가 뉴욕식 피자의 기원이다.
1984년 일시 폐업할 때까지 이 가게는 특별한 맛과 풍미로 높은 명성을 자랑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롬바르디의 손자와 그 친구가 현재의 32 스프링 스트릿 일대로 옮겨 ‘롬바르디(Lombardi’s)’를 재오픈 한다. 그것은 뉴욕, 나아가 미국 최초ㆍ최고령의 피자가게가 부활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어디나 원조에는 논쟁이 따르는 법. 이들이 잠시 폐업한 시기를 빼고 ‘최초ㆍ최고령 피자가게’에 대한 논란이 야기되었다. 1912년부터 한 시기도 쉬지 않고 운영되어오던 뉴저지의 ‘파파스 토마토 파이’가 이 논쟁에 가세한 것이다. 하지만 롬바르디는 전통식 화덕 제조법을 들어 2005년 창립 100주년 기념 이벤트까지 연다. 창립 당시 5센트에 팔던 것을 기념해 5센트 염가로 피자를 팔기까지 했다.
게다가 나폴리 출신들이 만든 나폴리타노를 중심으로, 조각 피자의 전통 역시 다시 한 번 부각시킨다. 뉴욕에서 흔히 슬라이스로 부르며 한 조각씩 판매하는 방식도 롬바르디가 원조라 주장했다. 원래 이것은 피자 한 판을 다 살 여유가 없던 가난한 이민자들의 사정을 고려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고. 2012년 9월 About.com의 히더 크로스는 이곳을 ‘뉴욕의 베스트 피자’로 선정했다. 신선한 모짜렐라 치즈와 산마자노 토마토소스는 현재까지도 100년 전통을 그대로 자랑하고 있다. 2013년 현재 이 일대를 다운타운 재개발의 거점으로 삼으려는 블룸버그 시정에 의해, 리틀 이태리는 재개발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특히 ‘소호, 트라이베카, 빌리지에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들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비견되며, 인근 소호와 엮어 보호(BoHo, 보워리+소호)라 지칭되기도 한다. 다양한 이탈리아 레스토랑과 바, 빈티지 숍이 자리한 이곳은 뉴욕의 힙스터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 이탈리아계의 먹이사슬로 완성된 마피아!
악명 높은 마피아도 리틀 이태리가 낳은 부산물로 빼놓을 수 없다. 흔히 잠비노파, 보나노파를 비롯한 5대 패밀리 중심의 뉴욕 마피아는 특유의 조직 구성과 잔혹한 복수극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영화 <대부>의 콜리오네파는 보나노파를 기반으로 묘사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마약 거래와 인신매매는 물론, 도박장 개설, 부동산 강탈, 보석 유통 독점 등 마수를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혹자는 ‘이들이 쥐고 있는 지하 경제가 뉴욕 경제의 30%를 넘을 것’으로 추산할 만큼 엄청나다. 물론 줄리아니 시장이 주도한 ‘범죄와의 전쟁’ 이래 이곳의 치안은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한때는 인근 중국계 갱단과 치열한 영역 다툼을 벌였지만, 양측 모두 현재는 보이지 않게 조용히 활동 중.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조직한 마피아가, 또 다시 이탈리아계 시장의 단속에 의해 진압되는 역설이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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