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호 <주보스턴총영사>
최근 동북아지역에서 영토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독도를 둘러싼 우리나라와 일본간 갈등, 센카쿠열도(중국식 명칭으로는 댜오이다오)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 그리고 쿠릴열도에 대한 러시아와 일본간 분쟁이 그것이다. 특히 일본의 독도에 대한 끈질긴 영유권 주장과, 이와 연결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같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무성의한 태도는 한일간 미래지향적 관계 증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로서는 독도가 지리적,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명명백백한 우리 땅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일본정부가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어 자칫 미국 국민, 나아가 국제사회가 일본의 주장에 동조하는 잘못된 인식을 가질까 무척 우려스럽다. 이에 필자로서도 이 기회에 우리 동포사회가 독도에 관한 사실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고, 또 우리 동포들이 미국 국민들에게도 올바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하는 바램에서 독도에 관한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문제의 기원은 일본이 한반도 침탈을 위해 벌인 러ㆍ일 전쟁(1904.2월-1905.9월) 과정에서 독도의 군사전략적 가치에 주목하여 독도를 불법적으로 편입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일본 내무성은 독도가 한국령이라고 생각했으나, 외무성 정무국장인 야마자 엔지로는 “지금이야말로 영토편입을 서두를 필요가 있으며, 독도에 망루를 세워 무선 또는 해저전신을 설치하면 적함 감시상 매우 유리하다”고 언급하여 군사목적으로 독도 영토 편입을 적극 추진하였다는 사실을 뒷받침 하고 있다.
이러한 독도 편입은 일본 중앙정부의 결정이었으나, 중앙에서 고시하지 않고 지방 관청 현관 앞에 은밀히 고시하는 것에 그쳤으며, 주변국에도 일체 독도에 대한 불법 편입 사실을 일체 통보하지 않았다. 즉, 일본정부는 독도 침탈의 사실을 한국뿐만 아니라 열강들이 알지 못하게 처리한 것이다. 당시 한국은 뒤늦은 1906년.3월에야 일본이 독도를 자국령으로 편입한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이때는 이미 한국이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1905.11월 을사늑약) 당하여 사실상 주권을 빼앗긴 직후여서 일본을 상대로 어떠한 외교적 항의도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일본의 독도 편입과정을 볼 때 독도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정에서 최초로 희생된 한국의 영토로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제국주의적 유산을 버리지 못하고 한국의 주권을 명백히 부정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독도가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한국의 고유 영토라는 사실은 이의의 여지가 없다. 독도는 고대 신라시대부터 독도를 자국 영토로 인식하고 영유권을 행사해왔다. 즉, 독도는 512년 신라가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된 우산국을 복속하면서부터 한국 역사에 등장하였으며 15세기 이래 수많은 한국의 관찬 고문헌, 고지도에서 독도를 우리 영토로 기록하였다. (예: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독도, 울릉도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 지리적으로도 독도는 울릉도로부터 육안으로 보여 울릉도의 일부로 인식되어 왔다.
반면, 일본은 1905년 독도 편입조치 이전까지 일관되게 독도가 자국령이 아니라고 인식했다는 점은 당시 관찬 문헌지도상에 독도가 자국령이라는 표시가 전무한 점에서 알 수 있다. 일본 내각은 독도에 대해 무주지(terra nullius)로 인식하고 영토편입을 결정하였는데, 이는 일본이 1905년 이전에는 독도를 일본령이 아니라고 스스로 인식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1905년 당시 소위 ‘무주지 선점론에 따라 독도를 불법 편입했으나 이후 독도를 자국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무주지 선점론‘과 ‘고유영토론‘을 동시에 주장하는 모순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일본은 이런 점을 의식하여 최근에는 ‘고유영토인 독도에 대한 영유의사를 재확인‘하는 차원에서 1905년 독도를 편입했다는 입장으로 변경하였는데 이는 일본이 스스로 논리의 일관성을 상실하였음을 보여준다.
독도가 일본령이 아니라는 점은 일본정부가 수차례에 걸쳐 정부차원에서 확인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17세기 후반 한일간 소위 울릉도 분쟁이 있었는데 일본측은 울릉도, 독도가 한국령임을 인정하여 자국 어민의 울릉도, 독도 도항을 금지하였으며, 1877년 일본 메이지 정부 최고행정기관(태정관)은 울릉도, 독도가 일본령이 아님을 공식 확인한 바 있다.
또한 한국은 1905년 일본 시마네현 고시에 앞서 1900년에 이미 ‘울릉도의 관할구역을 울릉전도, 죽도, 석도(독도)’로 명시한 법령을 반포(고종황제 칙령 41호 제2조)하였다. 이와 같이 독도는 어느모로 보나 한국영토임이 분명한 것이다.
일본은 독도가 역사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영토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독도의 본질은 역사문제인데 일본은 이러한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이를 덮어버리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짓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이 독도가 일본령임을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조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를 포기한다고 규정되어 있어 독도가 일본령이라는 언급은 어디를 보아도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이 조약에 독도에 대한 언급이 누락된 것은 일본의 대미 로비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은 오늘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일본의 영토에서 제외되는 섬들을 예시적으로 열거한데 불과하며 따라서 한국의 모든 외곽도서들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최근 일본은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에 회부하겠다고 하면서 한국이 이를 거부한 것에 대해 한국이 영유권을 입증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며 자신들은 국제법에 근거하여 평화로운 해결을 추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ICJ에 회부하려면 당사국간에 분쟁의 존재를 인정하고 ICJ 회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한국의 입장은 독도가 명백한 한국의 고유영토이며 따라서 독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어떠한 분쟁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따라서 ICJ에 회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에 거부한 것이다.
또한 한국의 독도 영유권은 역사적 증거와 법적 근거로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설사 ICJ에 회부된다 하더라도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시 이야기 하자면 한국이 ICJ 회부를 거부하는 것은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독도가 명백한 우리영토로서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일본이 ‘분쟁’을 억지로 조장하려는 일본의 불순한 의도에 말려들어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결국 일본의 ICJ 회부 제의는 ICJ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미명하에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려는 기도이며 국제사법절차를 정치적으로, 선전목적으로 악용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독도문제를 정치화하려는 이러한 일본의 부정한 시도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이 과거사를 덮으려고 한다면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불신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역사를 직시하고 부당한 주장과 행동을 즉각 중단하여 아시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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