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 많은 이민자들 환성과 눈물 교차하던 땅
▶ 1892~1954년까지 입국관리소 자리
1990년 이민 박물관 개장...100여년 전 선조 모습 고스란히
슬픔과 희망, 기대, 좌절을 그리다
자유의 여신상이 자리한 리버티 섬에서 바라볼 때 뉴저지 쪽으로 자리한 섬이 엘리스 섬(Ellis Island)이다(행정구역상 뉴저지주). 예쁜 이름과 달리 당초 요새로 쓰였으나, 1892년 입국관리소가 설치되며 용도가 바뀌었다. 이후 1954년 관리소가 공식 폐쇄될 때까지 이 섬은 수많은 이민자들의 환성과 눈물이 교차하던 땅이다. 60여 년간 2,500만 명을 심사해, 그 중 절반인 1,200만 명의 입국을 허가했다. 최전성기인 1907년에는 한 해 130만 명에 달하는 이민자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초창기 엘리스 섬은 ‘눈물의 섬’이라 불렸다. 비싼 배 삯을 주고 뉴욕까지 왔지만, 검사관의 심사에 불합격하면 바로 코앞의 맨하탄에 상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합격되면 타고 온 배를 그대로 타고 유럽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어떤 사람은 이 섬에 도착한 날을 ‘최종 심판의 날’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불안, 걱정, 슬픔과 희망, 기대, 기쁨이 교차했다. 무엇보다 이민자들은 검사관 앞에서 자신이 미국이라는 천국에 들어올 자격이 충분하다는 점을 온전히 증명해 보여야 했다.
이민 심사에는 대략 5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이 중에서 특히 의심 가는 사람은 ‘H(Heart, 심장)’라는 표식을 상의에 적었다. 2세 이상 아이는 직접 걸어보게 하는 검사도 실시했다. 아이가 걸을 수 없다면 ‘어딘지 의심 갈만한 병’이 있으리란 검사관들의 추측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창궐한 전염병을 두려워한 검사관들은 무엇보다도 대표적 눈병으로 평가받은 ‘전염성 결막염’을 철저히 조사했다. 만약 가족 중 누구 한 명이 이 병으로 의심되면 가족 전원이 심사에 불합격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정신 장애가 있는 이들은 아예 X 표식을 적어 따로 분리해뒀다.
유럽에서 이민자들의 유입이 급속도로 늘어나자, 1907년 미국 정부는 엘리스 섬에서 다루는 이민자 수를 하루 5,000명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하지만 뉴욕 앞 바다에는 매일 세계 각지로부터 15,000명씩 도착했다. 그들은 타고 온 배에서 엘리스 섬까지 페리로 운송되었지만, 혹독한 심사를 받기 전 이미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 며칠씩 대기해야만 했다. 무사히 합격된 사람만이 넓은 대합실에서 먼저 이주해온 부모 형제들과 재회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미지의 땅에 왔다는 희망과 가족들과의 재회에 마냥 기쁜 마음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이민자들의 마음을 한없이 들뜨게 했다. 특히 ‘미국은 풍요롭고 도로에 황금이 굴러다닌다’는 소문을 맹신하고 온 가난한 이민자들은 엘리스 섬에서의 심사 통과가 곧 행복의 시작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현재의 땅!
하지만 불행히도 이민자들의 삶은 그 후에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도리어 가난을 피해온 고국보다 더 냉혹한 현실 속에 던져졌다. 영어를 잘 모르고 다양한 민족과 문화 속에 적응하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그 영향의 직격탄을 맞았고, 낯설고 개발되지 않은 척박한 땅과 추운 기후는 이들에게 힘겨운 삶의 과제를 던져줬다. 특히 이민자 차별이 엄존하던 시대 상황은 이들의 삶을 더욱 각박하게 만들었다. 청운의 꿈이 상황에 따라 악몽으로 돌변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들의 꿈은 소박한 것이었다. 그저 ‘희망의 땅에서 가족들과 등 따습고 배부른 삶을 꾸려보겠다’는 것뿐, 그것은 오늘날 아메리칸 드림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 현재 이 섬에는 붉은 벽돌 건물이 자리한다. 바로 1954년 폐쇄된 입국관리소다. 현재는 1990년 9월 재개장된 이민 박물관으로 그 용도가 바뀌었다. 새로 단장한 박물관에서는 유독 백인 관광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100여 년 전 이곳을 찾은 선조들의 한과 눈물이 떠오른 탓일까. 나이 지긋한 이들이 전시물을 보며 눈물짓는 모습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이민과 관련된 다양한 사료가 전시되고 관련 다큐멘터리도 상영되고 있다. 2005년 공개된 윌 스미스 주연 영화 ‘미스터 히치’에서 주인공 히치는 멜라스와 제트스키를 타고 이곳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전시관을 돌다 자신의 선조가 이곳을 통해 건너왔음을 확인한 뒤 멜라스는 눈물짓는다. 아마 이곳을 찾은 관광객의 대다수도 그런 애달픈 감정을 지울 수 없지 않았을까. 그것은 과거 조상과 미래의 내가 만나는 현재의 광장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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