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영국 최초의, 그리고 아직은 유일한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의 타계소식이 전해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깊은 애도를 담은 성명을 통해 조의를 표하면서 “그는 우리의 딸들에게 깰 수 없는 유리창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 모범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투명한 ‘유리천장’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34년 전 대처가 지독하게 남성중심적인 영국정계의 최정상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유리천장을 ‘깼다(break)’라고 말하지 않았다. SMASH! - 박살냈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대처의 총리 취임은 남녀동등권 실현을 목표로 삼고 있는 페미니즘, 여성해방운동에는 최고의 상징이었다.
세계적으로 여성 지도자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대처는 정작 여성운동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여성계는 대처가 페미니즘을 경멸한다고 분개했고 대처도 “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참모에게 이렇게도 말했다. “여성운동가들이 날 싫어하지요? 그들 탓 안합니다. 내가 여성운동을 싫어하거든요, 페미니즘이라는 게 말하자면 독(poison)이니까”
생전에 대처는 논쟁을 좋아했다. 회의에서도 모두 합의할 눈치가 보이면 일부러라도 토론을 이끌며 한 치 양보 없는 대결을 벌인 후 승리를 즐겼다. 그처럼 격렬한 논쟁의 중심에 서서 사회를 뒤바꾸는 변화를 가차 없이 추진하는 총리에 대한 여론의 반응도 뜨겁게 맞부딪쳤었다. 영국을 절망에서 구해낸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들의 찬사와 사회 양극화를 초래한 커뮤니티 파괴자에 대한 성난 반대자들의 혐오가 물리적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철의 여인’ 대처에 대해선 여론의 반응조차 ‘무관심’은 옵션이 될 수 없었다.
양극적 반응이 그의 사망소식과 함께 재연되고 있다. 한편에선 과감한 경제정책으로 보수개혁을 주도하며 국가의 자긍심을 회복시킨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장사진을 이루고, 그 개혁의 그늘에서 생업을 잃고 정부의 지원도 끊긴 채 처참하게 거리로 내몰렸던 아픔을 기억하는 다른 한편에선 ‘마녀 대처’의 죽음에 환호하며 축배를 들고 있다.
뜨거운 논쟁의 주제는 그의 정치·경제 정책, 대처리즘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다. 여성과 여성운동에 남긴 대처의 유산은 무엇인가에 대한 평가도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유리천장을 박살내고 정상에 오른 대처는 많은 여성들에게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영감(inspiration)이었지만 여성운동계에 비쳐진 대처는 오랜 세월 터 닦아온 여성운동의 혜택을 받았으면서도 자신만 정상에 올랐을 뿐 다른 여성 지원에는 무관심한 개인주의자였다.
대처가 처음부터 여성운동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이 즐겨 말했듯이 “작은 마을 작은 가게집 딸로 태어나” 17세에 장학금을 받아 옥스퍼드에 입학한 재원이었지만 ‘여성금지’라는 규정에 따라 옥스퍼드 토론클럽엔 가입조차 하지 못했던 그는 정계진출 무렵엔 “여성들이여, 각성하라”는 신문기고를 통해 직업과 가정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국가 예산을 주부의 가계부 꾸리기와 연결시키며 선거 캠페인 중에서 여성성을 앞세우기도 했던 대처의 여성에 대한 관심은 총리 취임 후엔 점점 퇴색했다. 여성계의 기대와는 달리 여성각료 등용도 1명에 그쳤고 친여성 정책을 추진하지도 않았다. 심각한 국정 위기에 직면했던 총리에겐 ‘여성’에 관심을 가질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실망한 여성운동계는 분노했고, 한 성질 하는 대처는 “난 페미니즘 덕본 것 전혀 없다”고 맞받아쳤다. 하긴 진보적인 여성계에게 당시의 대처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며 가난한 아이들의 무료우유급식까지 중단시켜 “우유 날치기꾼 대처”로 불리는가 하면, 일하는 엄마들이 자녀양육에 소홀해 ‘탁아소 세대’를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대처의 정책들은 여성운동계가 공개지지하기에는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반여성적’이었다.
논쟁은 요즘도 계속 중이다. “대처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여성 운동가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주장과 “대처의 존재 자체가 페미니즘의 아이콘”이라는 반박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런 논쟁을 지켜보며 보통 여성들이 갖는 대처에 대한 감정은 양면적이다. 미트 롬니의 47% 동영상을 연상케 하는 대처 정책에 대해 거부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고, 차별과 편견을 딛고 자신의 힘으로 정상에 올라 어떤 남성보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여성 선구자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영화 ‘철의 여인’에서 대처 역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메릴 스트립의 생각도 비슷했다. “대처의 정책 중 일부가 잘못일 수는 있겠지만 전 세계 소녀들에게 공주가 되는 환상 대신 국가를 이끌 현실적 선택을 주었으니 존경할 만 하지 않은가?”
대처의 전기를 썼던 영국 작가 아인 데일은 여성 선구자로서 대처의 독보적 위상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다. “대처 총리시절이었던 1988년, 4살짜리 어린 조카가 나에게 ‘엉클 아인,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나요?’ 물었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는 이 남성작가의 반문에 많은 여성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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