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을 인터뷰할 땐 그런 일이 없는데, 외국사람을 인터뷰하면서 고맙고 미안하고 동시에 창피했던 기억이 여러번 있다. 우리보다 한국전통문화를 훨씬 더 잘 아는 외국인들 얘기다.
가장 최근엔 게티 뮤지엄 큐레이터 스테파니 슈레이더와의 인터뷰에서였다. 400년전 그려진 루벤스의 ‘한복을 입은 남자’의 배경을 조사하기 위해 그녀가 6년 동안 읽고 연구하고 만나고 방문한 책과 사람과 자료들 이야기를 듣다보니 너무 놀라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루벤스는 왜 이 그림을 그렸는지, 어떻게 지금의 정체성을 갖게 됐는지를 추적하기 위해 그녀는 17세기 시대배경과 국제정세, 루벤스가 읽었을 고서적들, 당시 화가들의 초상화 스타일로부터 의상연구까지 문화역사적 상황을 총체적으로 연구했다. 한국에 가서 한복전문가와 민속박물관장도 만났고, 버글린드 융만 UCLA교수의 도움도 받았다고 한다.
그 결과물이 전시회뿐 아니라 책으로까지 출판돼 나왔으니, 과연 한국사람이 이 그림을 연구했다면 그런 성과가 나왔을지, 의문스럽다.
이 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버글린드 융만 교수는 또 어떤가. 3년전 그를 인터뷰했을 때 나는 이야기도중 “감사합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많은 빚을 졌습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UCLA에서 한국미술사를 14년째 가르치고 있는 그녀는 미국에서, 아니 전세계에서 한국미술사를 가르치는 유일한 교수다. 그녀가 집필한 두 권의 저서는 영문으로 나온 유일한 한국미술 서적이고, 더 감동적인 것은 한국미술을 중국미술의 아류로 보아온 일반적인 학계의 관점과는 달리 “한국미술이 아시아미술의 중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인인 그녀는 한국미술 전문가가 되기 위해 서울대학, 괴팅겐 대학, 하이델베르그 대학, 대만의 푸렌 대학에서 공부하며 중국미술과 일본미술과의 관계까지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2개 취득한 다음 세계 유일의 한국미술사 교수가 되었다. 99년부터 4년간 LA카운티미술관의 한국미술부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최초의 한국실 개관에 큰 역할을 맡기도 했던 그는 도자기에도 조예가 깊어 2010년 UCLA 파울러 뮤지엄에서 ‘도자 속의 삶: 한국현대작가 5인전’을 큐레이트 한 바 있다.
지난 해 만난 코리안 아트 소사이어티(KAS)의 로버트 털리 회장도 잊을 수 없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18년전 일본 가는 길에 방문한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청자와 분청사기를 보고 매료된 후 한국미술에 관해 연구하고 찾아다니며 고미술품과 골동품을 수집해왔다. 2008년 뉴욕에서 한국전통미술 홍보단체인 KAS를 설립, 불과 5년만에 회원이 3,000명에 이르는 단체로 키워낸 그는 회원들과 정기적으로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들을 찾아다니며 코리안 아트를 감상하고 있는데 지난 해 처음으로 LA를 방문, 라크마와 퍼시픽 아시아 뮤지엄을 그룹투어 했었다.
도자기의 형태와 기법, 무늬와 색깔만 보고서도 정확하게 제작시대를 알아내는 털리는 미 고교 교과서에 최초로 한국미술사를 기술한 저자이기도 하다. 작년 초 미국 최대의 교과서출판사 맥그로 힐에서 나온 2권의 세계미술사 교과서에 자신이 쓴 한국미술 챕터가 수록됐다고 자랑한 그는 “미국의 고교생들이 억지로라도 한국미술을 공부하게 돼서 너무 기쁘다”고 했었다.
고마운 사람 중에 또 하나 반드시 언급해야할 사람이 2년전 LA매스터 코랄이 초연한 ‘무궁화: 샤론의 장미’의 작곡가 마크 그레이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고를 통해 이산가족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분단한국의 한과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대작 ‘무궁화’를 썼다.
북에 남아있는 가족을 찾으려 평생 애쓰다 작고한 재미한인 엔지니어의 이야기를 샘플로 엄청난 비극과 놀라운 가족사랑에 감동한 마크는 한국을 수차례 방문하고 한국 음악과 문화를 공부하며 곡을 써내려갔다. 바이올린의 선율로 산과 골짜기가 어우러진 한국의 시골풍경을 그리기도 하고, 기쁨과 슬픔, 분노와 절망, 광기와 염원 등 인간 감정의 모든 기복을 표현한 ‘무궁화’는 주류음악계의 호평을 받았으나 정작 한국에서는 한 번도 공연되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문제는 이렇게 남들이 차려주는 밥상을 거들떠도 안 보는 한국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감사장이나 표창장을 주어도 모자란 마당에 관심은커녕 그들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은 답답함이나 안타까움을 넘어서 그저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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