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과연 돈으로 행복을 사는 일이 가능할까. 이 주제를 놓고 심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오랫동안 깊이 고민하고 연구해 왔다. 그리고 이들이 내린 결론은 대체로 이렇다. “돈이 행복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정 수준의 소득을 넘어서면 상관관계가 사라진다.”
연구자들이 밝히는 행복을 증가시켜주는 소득의 상한선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연봉 10만달러 내외이다. 어떤 학자들은 15만달러까지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일정 수준 소득을 넘어서면 수입의 증가가 더 큰 행복감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돈이 많을수록 행복감 역시 높아진다는 것인데 140개국 국민들의 주관적 웰빙과 소득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연구도 소득증가가 무한대로 행복감을 높여준다고 보지는 않았다.
만약 높은 소득이 행복감을 안겨준다면 그 이유는 소득의 절대적 액수에 대한 만족 때문이라기보다 다른 이들보다 많이 번다는 상대적 지위확인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부자일지라도 주위 사람 모두가 부자면 나는 행복해지기 힘들다. 소설가 고어 비달은 “친구가 성공하는 매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죽어간다”는 말로 이런 심리를 묘사했다.
이런 까닭에 현자들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가르침을 열심히 설파해 왔다. 그러나 과연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것은 진실일까. 하버드대 마이클 노튼 교수와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엘리자베스 던 교수가 같이 지은 책 ‘해피 머니: 씀씀이의 과학’(Happy Money: The Science of Spending)은 돈으로 얼마든 행복을 살 수 있다는, 다소 도발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주장이 현자들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가르침의 타당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들이 제시하는, 돈으로 행복을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다른 이들에게 주라”(Give it away)는 것이다.
두 교수는 실험대상자들에게 아침에 5달러를 나줘 주고는 저녁까지 그 돈을 쓰라고 주문했다. 그리고는 돈의 용처에 따라 행복감이 달라지는지 조사했다. 그랬더니 자신을 위해 돈을 쓴 사람들은 돈을 받기 전과 같은 수준의 행복감을 보였지만, 가족을 위한 선물을 샀거나 노숙자들에게 이를 나눠준 사람들은 행복감이 훨씬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국가에서만이 아니라 미국, 캐나다, 우간다, 인도, 남아공 등 조사를 실시한 모든 나라들에서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두 사람의 결론은 이렇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쓸 때, 즉 ‘사회적 지출’을 할 때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개인적 소비’를 할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충무로의 전설적인 흥행사로 알려진 강우석 감독이 이번 달 신작 개봉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의 내용이 눈길을 끈다. 강 감독은 흥행에 성공해 수익이 나면 모든 스태프들에게 이를 골고루 나눠주는 거의 유일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기자가 이에 관해 묻자 그는 “스태프들에 대한 인센티브는 안 줘보면 모른다. 그 쾌감을. 돈을 쌓아 뒀더라면 내 인생에 지금과 같은 라인업은 없었을 것”이라는 거리낌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 감독처럼 큰돈을 만져볼 일이 없는 사람들로서는 그 쾌감을 경험해볼 도리가 없지만 ‘해피 머니’ 연구는 적은 돈일지라도 같이 나누면 기쁨과 행복감을 얼마든 맛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눔의 기쁨’은 연말에만 의례적으로 등장하는 캠페인성 구호가 아니다. 이것은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다.
무생물인 돈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것은 인간이다. 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는 그것을 쥐고 있는 손에 달려 있다. 한인사회에는 수천만달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돈 쓰는 일에 너무 벌벌 떨어 손가락질 받는 재산가가 있는가 하면,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고 회사 수익까지 직원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줘 존경받는 부자도 간혹 있다.
이런 부자가 너무 많이 나누는 바람에 곳간이 비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됐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해피 머니’의 정서적 효과뿐 아니라 이것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도 한 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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