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을 이겨낸 경제정책은 FDR의 ‘뉴딜’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때 연합군에 전쟁 물자를 수출하기 위해 중공업에 많은 투자를 하였고, 전쟁 후에는 자동차 붐을 타고 퇴역군인들의 3차산업 제품수요에 맞춰 자동차 산업을 확장하였다.
유럽각국이 전쟁으로 인해 생산력이 약화되자 대외경쟁력이 상대적으로 강해졌으며 유럽으로의 수출도 호경기를 이루었다. 미국에 경제적 호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 시기(1920년대) 미국에서는 잉여생산물이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설상가상으로 유럽의 전쟁피해로 인한 구매력저하, 공산화로 인한 소련의 세계시장 이탈 등으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증폭되었다. 그럼에도 투자열기가 식지 않고 계속 상승하자, 이러한 불건전한 시장경제는 금융계에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1929년 10월 24일(목) Genera Motors(GE)의 주가가 대폭락하면서 다른 주가도 매각 일색으로 변해서 주가는 대폭 하락했다. 이날 하루 동안에 자살한 투자자가 11명이나 된다고 한다. 주말에는 전미국의 신문이 주가폭락을 대서특필로 보도하였으며 10월 29일에는 10월 24일 하락폭보다 훨씬 더 심한 하락이 일시에 생겨 오후에는 증권시장을 폐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루에 140억달러가 사라지고 그 주(週) 전체의 손실액은 300억달러였는데 이 금액은 당시 미연방정부 연간 예산의 10배라고 한다. 이 증권파동은 결국 전세계의 경제공황으로 이어졌다. 1933년에는 미국의 모든 은행의 업무가 중지됐다. 공황은 최악의 상태로 번져 일반 대중의 생활은 필설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였다.
공황초기에 취임한 후버대통령(1929~1933)은 수요와 공급의 자율적인 작용을 중시하는 애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신봉하였으며 국내경제의 불간섭주의(laissez-faire)에 집착하여 괄목할만한 경제 복구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임기를 마쳤다. 후임인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1933~1945, 이하 FDR로 호칭)은 공황극복을 약속하는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대통령으로서 그가 내세운 공황 극복정책을 통괄해 뉴딜(New Deal)이라고 한다.
뉴딜을 역사에서는 ‘3R’이라고 일컫는다. Relief, Recovery, Reform이라는 뜻이다. Relief(구제)는 실업자 및 빈곤층을 가난으로부터 구제, Recovery(복구)는 국민 경제의 정상화, Reform(개혁)은 반복되는 불경기를 방지하기 위한 금융정책 개혁을 뜻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역대 대통령은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을 신봉한 까닭으로 정부의 시장개입이라던가 경제정책 등도 한정된 선을 넘지 않는 불간섭정책에 의존했는데, FDR 정부는 시장경제에 적극 참여하는 등 거시경제학 (macroeconomy)이론을 경제정책의 기본으로 삼았다. 거시경제학의 시조인 케인즈(John Keynes, 영국인 1883~1946) 경제이론을 처음 적용한 국가로는 미국이 처음이다.
FDR은 1933년 3월4일에 대통령으로 취임을 하였는데, 다음날은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국내 전 은행에 호출해서 휴업을 명령하고 라디오방송을 통하여 앞으로 1주일 이내에 모든 은행의 실태조사를 통해서 예금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국회로 하여금 경기회복과 고용확보책 등을 논의케하고 100일 이내에 관계되는 법을 모조리 제정통과토록 긴급조치 하였다.
‘후버 댐’은 뉴딜업적 중에서 언제나 최고로 꼽힌다. 후버댐은 1931년 FDR의 전임인 후버대통령 때 고용창출과 경제회복책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본격적인 사업시작과 완공은 FDR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뉴딜의 일부로 본다. 완공 당시의 이름은 보울더댐(Boulder Dam)이었는데 1947년에 후버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후버댐으로 개명하였다.
후버댐은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의 경계를 이루는 콜로라도강을 막은 댐이다. Dam(댐)이 생기기 전에는 강줄기가 높은 계곡사이를 흐르고 있었는데 이 계곡을 댐으로 막은 것이다. 댐의 높이는 221.4미터이고 넓이(위쪽)는 379미터, 두께는 바닥이 200미터 꼭대기는 14미터이다. 이 콩크리트 구조물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이었는데 뉴욕시에서 샌프란시스코시까지 16피트 넓이의 도로를 깔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이로 인해 생긴 호수(저수지) 이름은 Lake Mead이며 여기에 설치된 발전기는 도합 19기이다. 이 공사의 시공입찰에는 3개 건설업체가 응찰을 하였는데 Six Companies Inc.라는 회사가 낙찰되었다. 낙찰 가격은 $48,890,000이었는데 2008년도 달러가치로 환산을 하면 6억9000만달러정도 된다.
시공회사인 Six Companies Inc.는 이 공사를 위해서 6개 건설회사가 만든 합자회사(Joint Venture)이다. 이 합자회사 중 30%의 지분을 갖고 있던 Bechtel-Kaiser라는 회사는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현재 세계 제 1규모의 건설회사로 52,70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고 연간 계약고가 약 279억달러나 된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조선호텔의 엔지니어링회사로, 그리고 원자력발전소의 시공회사로 많은 공헌을 하였다.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 간의 해저터널도 이 회사에서 시공한 바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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