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주 동남부에 ‘왈라 왈라(Walla Walla)’라는 도시가 있다.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배꼽을 잡았다. 세상에 개 짖는 소리를 도시이름으로 정하다니, 웃겨도 너무 웃겼다. 하지만 그보다 더 웃긴 건 내 무지였다. ‘왈라 왈라’는 인디언 원주민 말로 ‘물이 많다’는 뜻이라고 했다. 자고로 왈라 왈라는 밀과 양파의 집산지이며 세계적 고급 와인의 명산지이다.
워싱턴주엔 원주민 말로 된 지명이 많다. 최대도시인 시애틀은 인디언 추장 이름에서, 제2 도시인 스포켄은 원주민 부족이름에서 각각 땄고, 제3도시 타코마는 원주민들이 ‘물의 어머니’로 추앙했던 타호마 산(레이니어 산)에서 땄다. 스노퀄미, 스노호미시, 퓨알럽 등도 부족이름이다. 이사쿠아는 ‘새 소리,’ 스큄(Sequim)은 ‘사냥터’라는 뜻의 인디언 말이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시애틀 북쪽의 머킬티오는 ‘야영하기 좋은 곳,’ 시택 공항 인근의 턱윌라는 그곳에 많은 개암나무(헤이즐넛)를 뜻한다. 웨나치는 ‘협곡에서 오는 강,’ 호큄은 ‘숲의 열망,’ 토페니시는 ‘산사태,’ 예음(Yelm)은 ‘강렬한 햇볕의 신기루’를 각각 뜻한다. 한결같이 시적이다. 페더럴웨이, 센트랄리아 따위의 멋없는 이름과는 비교가 안 된다.
세상엔 진짜로 웃기는 도시이름이 많다. 미시간주엔 ‘천국(Paradise)’과 ‘지옥(Hell)’이 공존한다. ‘샌드위치’(매사추세츠), ‘쿠키타운’(오클라호마), ‘치즈타운’(펜실베니아), ‘오트밀’(텍사스)등 먹거리 도시가 있고, ‘커피시티’(텍사스), ‘핫 커피’(미시시피), ‘커피 포인트’(아이다호)등 드링크 도시도 있다. 워싱턴주엔 스타벅스 커피보다 먼저 생긴 ‘스타벅’ 시가 있다.
라스베거스에서 털린 꾼들은 귀갓길에 외곽의 ‘라스트 찬스(Last Chance)’에서 완전히 알거지가된다. ‘Home’(워싱턴주)이나 ‘Sweethome’(오리건주)과 달리 ‘Boring’(오리건)과 ‘Dull’(오하이오) 주민들은 항상 따분한 모양이고, 버지니아의 ‘Fart’(방귀)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할 것 같다. ‘Poor Town’(노스캐롤라이나)과 ‘Needmore’(텍사스) 마을엔 거지들이 많은 모양이다.
자동차 이름을 딴 도시들도 많다. 미시간에는 캐딜락과 폰티액, 매사추세츠에는 어코드와 닷지, 미시시피에는 포드, 켄터키에는 셰볼레가 각각 있다. 현대나 기아 이름을 딴 도시는 아직 없다.
메릴랜드에는 자동차 이름 대신 ‘사고’(Accident)라는 도시가 있고, 켄터키에는 ‘실망(Disappointment), 미네소타에는 ‘황당’(Embarrass)‘이라는 황당한 도시가 있다.
‘교도소 농장’(몬태나), ‘난쟁이’(켄터키), ‘할 수 있음’(Can Do, 노스다코타), ‘맥주병 교차로’(아이다호), ‘손안의 새’(펜실베니아)라는 이름의 도시가 있고, ‘88’(켄터키), ‘84’(펜실베니아)처럼 숫자가 이름인 도시도 있다.
아예 이름 짓기를 포기하고 ‘아무 것도 아님’(Nothing, 애리조나) 또는 ‘무명’(No Name, 콜로라도)을 동네이름으로 정한 괴짜 주민들도 있다.
놀랍게도 ‘19금’을 연상시키는 도시 이름들도 있다. ‘Fucking’(오스트리아), ‘Dick’(크로아티아), ‘Intercourse’(펜실베니아), ‘Dildo’(캐나다), ‘Ass’(우크라이나), ‘Gayville’(사우스다코타), ‘Sexi’(페루), ‘Climax’(미시간) 등이다. 오리건엔 ‘멍텅구리 촌’(Idiotville)이 있다. 왜 이런 이름들을 짓는지 궁금하면 애리조나에 있는 ‘Why’ 마을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한국엔 새 행정수도로 건설된 세종 특별자치시가 있다. 내 고향 공주 바로 옆이다. 박정희 정부가 수도 이전 계획을 처음 내놓은 후 30여 년 간 엎치락뒤치락하며 한때 존폐위기에까지 몰렸다가 작년 7월 가까스로 출범했는데, 이름과 달리 별로 특별하지 않은 모양이다. 병원도, 학교도, 편의시설도 변변찮고 교통도 불편해서 정부부서들이 선뜻 옮겨가려 않는단다.
그런 불편이야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만 두고두고 께름칙한 게 있다. 이름이다. 특별시 이름으로 세종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세종은 국가기관이나 사기업체 이름으로 이미 식상하게 쓰이고 있다. ‘서울’처럼 순수 우리말도 아니다.
누군가가 ‘한울’을 제의했다. ‘하늘’ 또는 ‘한 울타리’라는 뜻이 있고, 서울과 돌림자가 같지만 영문표기(Hanul)는 더 편하단다.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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