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미군이 참전해 3만6,000명이 사망하고 9만2,000명이 부상당한 한국전은 오랫동안 ‘잊혀진 전쟁’으로 남아 있었다. 수많은 인명을 희생했음에도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었을 뿐 상황이 달라진 것은 별로 없고 한국전 피해 복구를 돕느라 예산만 더들어갔다. 미국인들이 그다지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한국전이 끝난 지 60년이 된 지금 미국인들은 또 하나의 ‘잊혀진 전쟁’을 갖게 됐다. 바로 지난 20일로 발발 10주년을 맞은 이라크 전쟁이다. 10년 전 그 날 바그다드 상공은 미군의 맹폭으로 화염에 휩싸였다. 미국은 이라크 인들을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에 빠뜨려 속전속결로 끝내려는 듯 최신 무기를 마구 퍼부었다. 그리고 한 달 여 만에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 W 부시는 스스로 비행기를 몰고 ‘임무 완수’(Mission Accomplished)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항공모함에 착륙했다. 모든 것은 순조롭게 끝난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악몽의 시작이었다.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대량살상 무기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거기다 회교권을 쳐들어온 미국을 골탕 먹이기 위해 알 카에다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게릴라가 준동하기 시작했고 해묵은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종교 분쟁까지 겹쳐 이라크는 내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미군은 2011년 말 완전 철수했지만 아직도 이라크는 정정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8년간의 전쟁으로 4,500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고 3만명이 부상당했다. 지금까지 들어간 전비만 2조달러다. 이런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무엇을 얻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무너뜨린 것은 잘 된 일이지만 민주주의가 찾아온 것도, 친미 정권이 들어선 것도 아니고 이라크 석유로 미국이 돈을 번 것도 아니다. 케리 국무장관이 이라크에 가 이란의 시리아 지원을 막아달라고 사정했지만 마이동풍이다. 이라크로서는 단 한 명의 병력도 이라크에 없는 미국보다는 이웃 이란과 그의 사주를 받는 시아파의 준동이 더 두려운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실패라는 것은 발발 10주년이 됐는데 아무 기념식도 없고 이 전쟁을 주도했던 부시 전 대통령, 체니 전 부통령,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 등 전쟁 주역들의 모습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히 말해준다. 어째서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까. 첫째는 정보력의 부재다. 엄청난 액수의 돈을 가져다 쓰는 미 정보당국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는지 파악하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이 때문에 고귀한 미국인 젊은이들의 생명이 불필요하게 희생됐다.
둘째는 부시의 판단 착오다. 사담만 무너지면 이라크는 쉽게 평정될 것으로 오판했다. 당시 육군참모 총장이던 에릭 신세키는 성공적인 이라크 주둔을 위해서는 수십만의 미군 병력이 필요할 것으로 공개 발언했다 찬밥 신세가 된 후 은퇴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은 가장 많을 때도 16만을 넘지 않았는데 이는 인구 1,800만 이라크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숫자라는 것이 곧 판명됐다.
이라크 침공 직후 장장 22년이란 오랜 세월 주미 사우디 대사를 한 반다르 왕자는 사담 지도부만 치고 나머지는 그대로 쓰라는 조언을 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라크 군 해산으로 졸지에 실업자가 된 수니파 회교도들은 도시 게릴라로 변해 미군을 괴롭혔다. 치안 상태가 엉망인 바람에 전후 복구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주둔군 지도부의 무능과 부패까지 겹치면서 이라크 인들의 미국에 대한 반감은 날로 커갔다.
이라크에서의 재난은 레이건 이후 20여년간 상승세를 타던 공화당을 추락시켰다. 2006년 선거에서는 의회 다수당 자리를 내주고 2008년 선거에서는 백악관마저 빼앗겼다. 불과 수 년 전까지 공화당의 리더이자 대통령이던 아들 부시는 요즘 완전 찬밥이다.
공화당의 기본 이념은 보수고 보수 철학의 바닥에는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라크 전을 주도한 네오콘들은 무력을 사용해 자신의 이념을 실현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라크 전은 공화당과 보수파들에 두고두고 아픈 상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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