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의장으로 있는 버지니아주 훼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지난 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나흘간 25시간 정도에 걸쳐 이번에 새로 고용할 교육감 후보들의 1차 심사를 마쳤다. 2차 심사는 4월 첫 주에 있게 된다. 2차 심사 때에는 교육위원회의 위촉을 받은 18명의 교직원, 학부모, 학생 그리고 지역 사회 대표들로 구성된 인터뷰 패널도 후보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장단점에 대한 의견을 교육위원회에 제출하는 기회를 갖는다. 이번에 1차 심사 중 당연히 교육감 역할에 대해 후보들의 생각을 들어 보게 되었다. 교육예산에 관한 부분도 포함되었다.
버지니아주에서는 교육위원회에 징세권이 없다. 그래서 교육예산은 연방, 주, 그리고 카운티 정부에 의존하는데 훼어팩스 카운티의 경우 카운티 정부가 부담하는 비율이 70%가 넘는다. 그리고 카운티 정부가 부담하는 액수의 규모도 카운티 전체 예산의 절반이 넘는다. 교육예산 수립 과정에서 일단 교육감이 준비하는 1차 예산안이 가장 중요하다. 교육예산 확보를 위해 교육위원회가 카운티 징세권을 가진 수퍼바이저 위원회와 벌이는 줄다리기의 시발점이 바로 그 1차 예산안이기 때문이다. 거의 매년 카운티 수퍼바이저들은 교육감의 예산안에 대해 불만을 표한다. 카운티 전체적 세수나 경제 상황을 고려치 않은 무리한 요구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때로는 공교육 부문만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은 이기적 발상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예산 공방 가운데 종종 등장하는 것이 교육감의 역할에 관한 토론이다. 과연 교육감은 예산수립 과정에서 공교육에 필요한 부분에만 신경을 쓰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카운티의 전체적 예산필요 상황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게 된다.
지난 주 교육감 후보들의 1차 심사 때 이러한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던 중 현 잭 데일 교육감의 전임자였던 댄 다메니치 교육감의 “지갑”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강성이었던 다메니치 교육감은 교육예산 확보에 있어서 항상 선봉장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었다. 교육감으로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된다고 믿었다. 자신의 역할은 오로지 공립학교의 예산필요를 알리고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공립학교 교육감이지 카운티 정부 교육감이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소신에 대해 카운티 수퍼바이저위원회 의장은 몹시 불편해 했다. 그 의장도 다메니치 교육감 이상으로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의 의사 표현에 거침이 없는 성격의 소유자 였다. 그래서 둘 사이에 종종 마찰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2004년 초 다메니치 교육감이 은퇴결심을 공표하고 교육위원회와 수퍼바이저 위원회가 예산문제로 연석회의를 하던 자리였다. 다메니치 교육감으로는 수퍼바이저들과 예산에 관해 논의하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 때도 역시 교육감과 수퍼바이저 위원회 의장 사이에 날카로운 공방이 오고 갔다. 물론 수퍼바이저 위원회 의장은 교육예산이 과하다고 했고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충분히 더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모두 다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실시하고 있는 교육프로그램들의 우선순위를 정해 일부를 정리하는 것도 고려해 보라고 했다. 다메니치 교육감은 이에 질세라 자신의 예산안에 필요치 않은 프로그램은 전혀 없다며 있었다면 당연히 예산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공교육이 중요하다고 여기면 당연히 제출된 예산을 모두 채워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덧붙여 마지막으로 수퍼바이저 위원회 의장을 가리키며 자신이 교육감으로 맡은 역할이란 의장의 “지갑안에 있는 돈을 일전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빼어 가는 것이다” 라고 내뱉었다. 순간, 수퍼바이저 위원회 의장의 얼굴은 당황과 분노로 흑적색으로 변했고 바로 대꾸를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지갑’ 에피소드는 다메니치 교육감의 은퇴 리셉션으로까지 이어졌다. 리셉션에는 공립학교에 직접 관련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명망가들도 많이 참석했다. 물론 수퍼바이저 위원회 의장도 좋든 싫든 피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인사를 마치고 다른 행사 참석을 핑계로 일찍 자리를 뜨는 수퍼바이저 위원회 의장의 머리 뒤쪽으로 다메니치 교육감이 큰 소리로 농담을 한 마디 던졌다. “의장님, 당신의 지갑이 내 손 안에 있네요!” 리셉션 자리가 즉시 웃음에 파묻혔다. 물론 수퍼바이저 위원회 의장도 웃었지만 쓴 웃음이었다.
그 후 교육위원회가 다메니치 교육감의 후임을 고용할 때는 수퍼바이저 위원회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인물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 잭 데일 교육감의 역임기간동안 수퍼바이저 위원회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의견들이 분분하다. 좀 더 원만한 관계유지가 필요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고 교육감이 너무 순응적이었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전임자에 비해 훨씬 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은 확실하다. 다음 교육감은 어떨지 모르겠다. ‘필요’에 따라 ‘강, 온’을 적당히 잘 조정해 가며 수퍼바이저들을 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교과서적인 주문일 것이다. 문제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그 “필요”의 존재 여부와 “강, 온”의 정도가 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아마 다메니치 전 교육감이나 데일 현 교육감도 본인들 관점에서는 항상 필요에 따라 적절히 강, 온 전략을 잘 사용해 왔었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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