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부터 연방의회는 다시 휴회에 들어간다. 2주간의 봄방학, 부활절 휴가다. 아무 일도 안하는 ‘Do-Nothing’ 의회로 눈총 받는 처지이지만 그래도 놀러가기 전 마쳐야 할 일은 산더미다. 그중 첫 번 째가 다음 주 27일에 만료되는 잠정 예산안의 6개월 연장안 통과다. 그걸 못할 경우에 벌어질 연방정부 폐쇄소동은 민주·공화 양당 모두 원치 않으니 오늘내일 사이로 무난히 처리될 것이다.
재정절벽에서 시퀘스터로 이어졌던 금년 워싱턴의 예산전쟁은 이제 3라운드로 접어들고 있다. 그 첫 단계로 지난 주 하원 공화당과 상원 민주당이 제각기 2014회계연도 예산결의안을 공개했고 양당은 각기의 예산안을 휴회 전 자신들의 홈그라운드에서 표결에 부칠 작정이다.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에선 공화당인 폴 라이언 예산위원장의 예산안이,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에선 민주당인 패티 머리 예산위원장의 예산안이 당론에 충실한 찬반으로 어렵지 않게 통과될 것이다.
순탄한 전망이 가능한 것은 일단 거기까지다. 그 이후론 험난한 여정이 계속될 것이다.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하원안과 상원안이 섞여져 절충안이 나올 수 있을지, 워싱턴이 갈망해온 ‘대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지금으로선 불행히도 끝없는 이견과 불화 속에 논쟁이 거듭되면서 예산안은 또 통과하지 못한 채 적대감만 쌓이고 워싱턴은 지난 몇 년의 교착상태에 그대로 머물게 될 공산이 크다.
지난 몇 주 바쁜 일정을 쪼개 공화당 의원들과 잇달아 식사를 하고 3번에 걸친 의회 친선 방문을 통해 펼쳤던 오바마 대통령의 ‘미소작전’이 결국 별 효과를 못낸 것이다.
공화당 하원의 라이언안과 민주당 상원의 머리안은 내년 예산을 포함한 10개년 연방적자 감축대책이다. 최대 쟁점은 ‘균형예산’ - 지난 주 12일 먼저 제출한 라이언안은 10년 내에 현재의 적자를 흑자로 전환시키는 균형예산 실현을 내세웠고, 하루 뒤인 13일 내놓은 머리안은 무리한 균형 실현보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우선시하며 점진적으로 적자를 감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각기 목표도 다르지만 달성 방법 또한 극히 대조적이다.
라이언의 예산안이 시행된다면 부유층과 기업의 세금이 내려가고 국방 지출이 늘어나는 반면 오바마케어 폐지로 3,000만명의 무보험자가 정부지원 헬스케어 혜택을 잃게 되고 푸드스탬프와 학자금 대출, 가난한 어린이의 무료점심 지원도 줄어들게 된다. 1959년 이후 출생자의 메디케어는 정부가 발행하는 바우처를 받아 각자 민간보험을 선택 가입하는 민영화로 바뀌게 되며 저소득층의 메디케이드는 주정부로 이관되면서 대폭 삭감된다.
이 같은 긴축 살림으로 향후 10년간의 지출을 41조 달러로 막아 2023년엔 70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할 수 있다고 라이언은 주장한다.
상원이 4년 만에 처음으로 제출한 것이어서 그 존재 자체가 중요한 머리의 예산안은 라이언안처럼 극단적은 아니다. 약하지만 중도적이고 타협의 여지도 있다. 시행될 경우 2023년에도 적자는 완전 해소되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감축된 5,500억 달러선에 머물게 된다.
대신 약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훼손은 최소한으로 방어하고 하이웨이와 학교 등 기간시설 투자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하게 된다. 10년간 연방정부의 지출은 46조 달러로 잡았는데 부유층과 기업의 과도한 공제혜택 축소 내지 폐지를 통해 세수입을 올리고 국방예산을 삭감하며 오바마케어 시행을 통해 메디케어 경비를 절감하고 메디케이드 지출 역시 삭감하여 충당할 계획이다.
라이언안도 탈세와 감세를 통한 세수입 증가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머리안이 적자 감축의 대책으로 그 같은 증세와 삭감을 병행하려는데 비해 라이언안은 부유층과 기업의 소득세율을 현행 39.6%에서 25%로 내리고 그 줄어든 재정을 증세수입으로 충당하려고 한다.
공화당은 머리안이 균형예산을 이루지 못한다고 추궁하고, 민주당은 라이언안이 부유층에 감세혜택을 주면서 빈곤층 지원을 대폭 삭감할 뿐 아니라 “병든 경제라는 환자를 죽이는 극약 처방”이라고 공격한다.
사실 이 논쟁은 지난 대선으로 결론이 났어야 한다. 2011년 처음 소개되었던 라이언의 예산은 벌써 3번째 조금씩 수정을 가해서 제시되고 있으며 지난 대선 때 공화당 예산정책의 뼈대이기도 했다. 부통령 후보로 그 재정정책을 들고 나온 대선에서 패배했는데도 라이언은 같은 예산안을 다시 고집하고 공화당은 ‘균형예산’을 기치삼아 단합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한참 다른 두 개의 예산안이 금년 예산전쟁 3라운드의 시발점 뿐 아니라 2014년 중간선거에서도 큰 정부와 작은 정부로 맞서는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는 신호다.
부활절 휴가에서 돌아오는 4월 둘째 주, 백악관으로부터 오바마의 예산안도 제출되면 하원안-상원안-오바마안을 둘러싸고 대치와 타협을 거듭하는 예산협상이 여름까지 계속될 것이다. 지켜보는 국민들은 답답하다. ‘균형예산’이라는 목표를 함께 수용하되 그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 또한 극단적이 아니라 ‘균형 잡힌’ 합리적 방법을 택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예산안은 천문학적 숫자와 난해한 용어가 나열된 지루한 이슈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기본은 통치철학의 가치관인 것을 깨닫게 된다. 여론의 다수가 적자감축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안전망 훼손은 방치한 채 부유층 감세를 추진하는 라이언 예산안에 등을 돌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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