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2004년 6월 고 김수환추기경(서울대교구교구장)이 메리놀수도원 초청으로 뉴욕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김추기경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 중에 하나가 김수희의 ‘멍에’라고 했다. 그러며 “당신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에서 ‘당신’을 ‘예수’라 생각하며 부른다고 해 기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2009년 별세한 김추기경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1969년 3월, 교황 바오로6세에 의해 최연소(46세)추기경에 임명된 가톨릭성직자다. 그의 삶은 겸손 그 자체였다. 그는 평생을 교회와 나라가 잘되기를 위해 기도했고 독일에서 전공한 사회학을 기본으로 한국의 민주화에 앞장섰다. 아마 그가 있었더라면 최초의 동양 교황이 되지 않았을까. 3월13일 로마에선 제266대 신임 교황이 선출됐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76)추기경.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선출된 교황은 새 이름을 짓는데, 아씨시의 성인 프란체스코의 이름을 빌려 ‘프란체스코 1세’라 지었다. 성 프란체스코의 청빈하고 겸손한 삶을 본받아 교황의 직무를 다하려는 뜻에서인가 보다.
이번 교황 선출은 새로운 기록을 낳았다. 북·남미 출신으론 처음이다. 가톨릭내의 예수회소속으로도 처음이다. 731년, 시리아의 그레고리오 3세 교황 이후 1,282년 만에 선출된 비유럽권 교황이다. 이날 히
스패닉 방송은 하루 종일 새 교황 소식을 방영하며 뉴스를 내보내는 것을 보아 중남미 나라들의 경사 중의 경사요 축제임이 확실하다.
교황 프란체스코1세는 1958년 예수회에 입문해 수도사가 됐다.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가르쳤고 지방을 돌며 사목생활을 했다. 예수회수도원 원장을 역임했고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2001년 추기경이 되었다. 대주교시절 손수 운전을 하는 등 청빈과 섬김의 삶을 보여주었다.
교황이 자신의 교황이름으로 명명한 프란체스코는 온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평생 불우이웃과 함께 산 중세기 수도사다. ‘평화의 기도’는 지금도 마음을 울려주는 그의 기도문이다.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하소서...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서 받고/ 용서함으로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1206년 회심한 프란체스코는 나환자와 친구하였고 자신의 몸처럼 이웃을 섬긴 “가장 예수를 닮은 사람”이란 평을 받는 성직자다. 그는 살아생전 프란체스코수도회를 만들었으며 ‘작은형제회’로도 불린다. 아마도 새 교황 프란체스코1세는 이런 수도사의 삶을 그대로 가톨릭정신으로 이어가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짓지 않았나 싶다.
라틴어로 파파(Papa)라 불리는 교황은 2,000여년의 기독교역사를 대변해주는 기독교의 증인들이다. 초기엔 로마의 박해를 받아 예수의 제자 베드로(제1대교황)를 비롯해 고르넬리오, 루치오1세, 식스토2세 등의 교황들이 순교 혹은 유배당했다. 박해가 끝난 것은 312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밀라노칙령 후 부터이다.
2,000여 년간 연연히 이어져 온 교황의 자리. 지금 교황의 자리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로만 가톨릭 신자 12억명을 섬기는 자리다. 전혀 예기치도 않았던 5번의 투표 결과로 선출된 프란체스코 1세. 그에게 겸손과 청빈의 삶이 없었다면 결코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뽑히지 않았을 것이다. 성 프란체스코의 겸손, 청빈과 일치한다.
김수환추기경을 추모해 본다. 46세에 추기경이 됐는데 프란체스코1세는 64세에 추기경이 됐었다. 김추기경이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아시아에서 교황이 나오지 않았을까. 대주교의 자리에서도 손수 운전을 해가며 지방 사목을 다니든 청빈과 겸손의 프란체스코1세.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주는” 새 교황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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