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미국에서 두 사내아기가 태어났다. 첫 아기의 이름은 빌 게이츠이고 둘째는 스티브 잡스이다. 그래서 둘은 동갑내기다. 두 사람은 대학을 중퇴하고 전자 컴퓨터산업에 뛰어들어 대 성공을 거두었다. 전자는 하버드대학 중퇴생으로 마이크로 소프트 사를 설립, 후자는 리드 대학 중퇴생으로 애플 컴퓨터를 설립하고 아이폰과 아이팟을 개발하여 각각 세계기업의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는 세계에서 제일 부자가 됐고 스티브 잡스는 네 번째 부자가 됐다. 이들은 자신들이 세운 회사의 CEO 자리를 인생의 왕성기인 50대에 접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인생의 속도’라는 점에서 대성을 이룬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른 점들이다. 이들은 ‘인생의 속도’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인생의 방향’에서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빌은 아버지를 저명한 변호사로 어머니를 은행의 이사로 둔 다복한 상류층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명문 사립학교를 다녔으며 탁월한 성적을 기록했다.
한편 스티브는 부모의 결혼 전에 태어난 아들로 어머니에 의해 생후 1주일 만에 필/클라라 잡스 부부의 양자로 입양되어 양부의 성을 따르게 되었다. 공립학교에서 보낸 그의 학창시절은 낮은 성적과 말썽으로 점철되었다. 이를테면 ‘인생의 방향’에서 가정환경에서부터 현저하게 다른 길을 걸었다.
이들이 걸어 온 ‘인생의 방향’을 좀 더 살펴보자. 우선 이들이 대학을 중퇴한 이유가 서로 다르다. 빌은 대학에서 더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 스티브는 양부모에게 비싼 등록금을 부담시키지 않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다. 빌은 마이크로 소프트를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후 듀크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은 귀재 멜린다와 결혼하여 귀여운 딸을 두고 있다. 반면 스티브는 사귀던 여자 친구가 임신하자 결혼하지 않고 헌신짝처럼 버렸다. 여자 친구가 딸을 안고 스티브에게 찾아오자 자신은 정관수술을 했으니 내 딸일리가 없다고 우기다가 먼 훗날에야 친딸로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CEO직에서 물러서 은퇴했다. 그러나 그 시기와 이유가 서로 다르다. 빌은 2000년에 은퇴한 뒤 곧 바로 빌 앤드 멜린다 재단을 설립하고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저개발국가와 미국의 보건 교육 등을 위해 200억 달러를 기부하여 세계 최고의 부자에서 세계최고의 기부자가 됐다. 그는 지금 자선사업을 풀타임으로 정하고 그동안 모은 돈을 사회에 다시 돌려주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2010년 8월24일 갑자기 은퇴 선언을 한 스티브는 은퇴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았으나 건강 때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그는 췌장암으로 수 년 동안 고생해오다가 2년 전에 간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억만장자가 되고 건강의 역경을 겪어 온 스티브였으나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결심을 한 적은 없다. 그는 2011년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두고 ‘노랑이 억만장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문제를 생각조차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두 사람은 각각 대학 졸업식 대표연사로 초청되었다. 빌은 모교 하버드대학 2007년 6월 7일 졸업식에서 연설을 했다. 연설의 주요골자는 돈을 열심히 벌어서 사회에 환원하여 모든 사람들이 경제발전의 혜택을 골고루 받게 하여야 한다는 것. 그는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버는 것 보다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후에 그의 경제사상을 창조적 자본주의라고 정의했다. 그는 모교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고 하버드 졸업생이 되었다.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본을 보였다.
스티브는 모교인 리드 대학이 아닌 스탠포드 대학 2005년 6월 12일 졸업식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성공의 목표’를 향해 뒤돌아보지 말고 초스피드로 달려가 성취할 것을 졸업생들에게 당부했다. 물론 ‘속도’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돈을 버는 방법은 언급하면서도 번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이었다. 그는 모교 리드대학에서 졸업장도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는 ‘인생의 속도’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좋은 본을 남겼으나 ‘인생의 방향’에 대해서는 혼선을 주었다고 말하면 좀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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