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니티 교회: 뉴욕 정신.교육의 거점...냉정한 도시의 삶 소중한 안식처
월스트릿: 굴지의 금융기관들 대거 밀집한 세계 금융 자본의 본산
고층 빌딩이 움집해 어쩐지 차가움이 느껴지는 로어 맨하탄 지역. 인근에 자리한 증권가의 기운을 한 몸에 받은 듯 비즈니스 수트를 걸친 이들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이 도회적 풍모에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러운 건물 하나를 발견하며 뜻밖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지 모른다. 무려 87m에 이르는 첨탑이 눈에 띄어 한 눈에도 오래된 교회임을 알 수 있다. 이 교회는 1698년에 최초로 지어졌으나 불로 소실된 뒤, 1846년 네오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현재까지 남은 공공건물 중 뉴욕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주인공은 영국 국교회 에피스코팔파의 모체인 ‘트리니티 교회Trinity Church’. 공개된 내부로 들어가자 하늘 높은 천정에, 따뜻한 공기가 감싸 안은 듯 한 분위기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마침 성가대에 선 찬양단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어쩐지 엄숙해지며 뉴욕에서 쉽게 접할 수 없던 푸근함마저 느껴진다. 누군가 세속과 금욕의 차이를 종이 한 장 차이라 했던가. 인근 월스트리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호젓함에 잠시나마 긴장을 풀어본다.
한 때 ‘컬럼비아대의 전신’인 킹스 칼리지가 자리했던 이곳은, 뉴욕의 정신·교육의 거점으로서 이름이 높았다. 비록 현재는 교회의 본래 목적보다 관광지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한 듯 보이고, 한편으로 고층 빌딩 사이에 매몰된 듯 한 인상마저 준다. 뉴욕이 자랑하는 문학가 헨리 제임스의 말을 빌리자면 ‘일대의 상업성에 묻혀 그 어떤 신성함도 발하지 못한다’는 한탄도 충분히 가능할 법하다. 하지만 거꾸로 그 말을 돌려, 이 세속적 땅 위에 정신적 성역이 존립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냉정한 도시의 삶에 소중한 안식처가 되는 듯하다.
‘세계 금융자본의 거점’ 월스트릿
편 트리니티 교회의 정숙함에 취해 길(브로드웨이) 건너편의 좁은 길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180도 다른 세상과 만나게 된다. 바로 ‘세계 금융 자본의 본산’이라 불리는 ‘월스트릿(Wall Street)’이다. 하지만 화려한 명성에 비해 어쩐지 소박한(?) 규모에 도리어 실망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2008년 금융위기가 있었다 해도 그 이름부터 화려한 월스트리트 아니던가. 그러나 오해는 금물. 그 여파와 상관없이 원래부터 월스트릿은 이렇게 좁은 지역이었다. 일대에 NYSE를 비롯해 JP모건체이스, 시티,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건스탠리 등 세계 굴지의 금융기관들이 대거 밀집해있다.
일반적으로 월스트릿 기원은 1792년 주식거래인 24명의 첫 거래라고 알려진다. 항구가 가까운 지리적 입지에, 무역에 필수적인 업종 특성상 월스트릿은 뉴욕 발전사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하지만 혹자는 그보다 이전인 ‘1790년 독립전쟁의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국채 8,000만 달러를 발행한 일’을 금융·투자 시장 탄생의 계기로 주장한다. 혹시 24라는 숫자에 과도하게 집착한 건국 초기 사가들의 욕심이 부른 에피소드는 아니었을까. 참고로 이들은 ‘뉴욕을 원주민에게 처음 산 네덜란드인들도 24달러(60길더)에 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동안 월스트릿으로 상징되는 미국식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왔다. 때때로 그것은 과격한 폭력행위로 나타나 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1920년 9월 16일 정오 월스트릿과 뉴욕증권거래소(NYSE) 건물이 만나는 지역, 한 마차에서 폭탄이 터지며 33명이 죽고 4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한 대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뉴욕의 첫 테러로 기록된 이 사건은 ‘아메리칸 아나키스트 파이터즈’라는 과격파 집단에 의해 자행되었다.
‘자본주의의 중추, 악의 근원’으로서 월스트리트가 타깃이 된 것이다. 하지만 역사란 참 기묘하다. 이러한 흐름이 약 1세기를 지나 그대로 반복될지 누가 알았을까. 2011년 말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그 대표적 움직임이었다. 부의 불균형과 이를 통한 사회적 불만 고조, 그리고 그에 저항한 일련의 단체 행동들. 비록 이전만큼 과격하고 무질서한 방법으로 이뤄지지는 않았으나, 그 속에 담긴 메시지만큼은 명징하게 다가온다.
※ 뉴욕증권거래소 (NYSE)
커다란 성조기가 기둥 전면에 드리워진 그리스 양식의 7층 건물 뉴욕증권거래소는, 세계 경제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거의 상투구처럼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활력 넘치는 경제를 상징하듯 수많은 주식 거래인들이 정신없이 활동하고 있다.
이와 함께 화려하게 돌아가는 전광판에는 끊임없이 숫자가 흘러나온다.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4시까지 이뤄지는 일련의 거래는 매일 세계인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이곳의 거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우리네 펀드와 주식의 향방을 상상해봤다. 상한가를 치면 태평양 건너의 투자자들이 웃고, 내려가면 울상이 되고 마는 현실. 그 씁쓸한 자화상에 쓴웃음이 나지만, 한편으로 세계 각지에 엄청난 파급력을 낳는 영향력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비록 9.11 테러 이후 내부에서 주식 거래하는 장면이 공개되지는 않으나 그 존재감만큼은 여전하다. 특히 테러와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이후 경비가 한층 삼엄해졌지만, 그렇다 해도 이 건물 내에서 벌어지는 ‘쩐의 전쟁’의 치열함에는 결코 이르지는 못할 듯. 참고로 2011년 말 이곳에서 상장된 기업의 자산 총액은 무려 14조 2420억 달러에 이르며, 하루 평균 거래액만도 1,50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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