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crastination’ 한국어로 번역하면 꾸물거린다, 미룬다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심리학계에서는 미루는 버릇의 증세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을 만큼 현대인들에게는 꽤나 심각한 증세로 유병율은 15%~20%나 된다.
이같이 현대인이 가장 이겨내고 싶어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미루는 습관인데 미국 정치권도 어려운 정치적 결단을 미루는 나쁜 버릇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올해 1월1일부터 발동될 예정이었던 ‘재정절벽’(fiscal cliff)을 지난해 12월31일 하루 전에야 가까스로 합의를 이끌어 낸 미국 정치권이 연방정부의 예산 자동 삭감을 뜻하는 ‘시퀘스터’(sequester)를 앞두고도 역시 막판까지 ‘치킨 게임’을 벌였다. 우리 같은 이민자는 물론 미국서 태어나고 자란 본토 미국인들에게도 생소한 시퀘스터라는 단어가 미 정가를 뒤흔든 2월이었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와 연방의회 공화당 지도부가 합의 도달에 실패하면서 결국 시퀘스터가 오늘(1일)부터 공식적으로 발효된다. 민주·공화 양 당은 이번에는 시퀘스터를 막아보려는 노력조차 시도하지 않았고 1일 회동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시퀘스터 발효가 가뜩이나 어려운 미국 경제에 얼마나 큰 타격을 미칠지가 초유의 관심사다.
연방 의회는 지난 1985년 연방정부 재정 적자가 지속적으로 불어나면서 ‘균형 예산 및 긴급 적자 통제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예산을 강제 조정하는 것을 시퀘스터라고 한다.
이 법은 당초 올해 1월1일부터 적용됐어야 했지만 정치권이 세금 인상과 예산 삭감이 동시에 시행되면 미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해 일부 세금을 인상하면서 시퀘스터 발동 시기를 3월1일로 미뤄놓았었다.
민주·공화 양 당이 3월중에도 시퀘스터 연기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2013 회계연도가 끝나는 오는 9월30일까지 국방비 460억달러와 일반예산 390억달러를 합친 850억달러가 깎인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오는 10월1일부터 시작되는 2014 회계연도를 포함해 앞으로 10년간 회계연도별로 1,100억달러씩, 10년간 총 1조1,000억달러가 자동으로 삭감된다.
850억달러가 삭감되면 미국의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은 자명하다. 예산이 대규모로 삭감되면서 고용 상황이 악화하고 기업 투자와 소비 지출이 위축될 것은 뻔하다. 미국 경기가 다시 침체 상황에 빠지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학자들은 시퀘스터로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했던 2.0%에서 적게는 0.4%에서 많게는 최고 1.0%포인트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시퀘스터가 도입된 배경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16조4,000억달러에 달하는 연방정부 부채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1791년 7,500만달러로 시작한 연방정부 부채는 현재 16조4,000여억 달러로 늘어나면서 미 국민 1인당 5만2,000달러 씩 빚을 진 셈이다.
개인이나 기업, 정부나 수입 보다 지출이 많게 되면 재정적 파탄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그러나 매년 1조달러씩 늘어나는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규모 예산 삭감이 전제가 돼야 하지만 이는 가까스로 회복세에 접어든 미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지속적인 부채 증가는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만큼 세금인상과 예산삭감 병행을 통해 재정 적자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세상만사에 쉬운 일은 없다고 연방정부 부채도 마술 지팡이를 휘둘러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민주·공화 양 당의 시퀘스터를 둘러싼 정치 공방을 치킨 게임으로 부른다. 일명 ‘겁쟁이 게임’으로도 불리는 치킨 게임에서는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미국인들에게 치킨은 겁쟁이나 비겁한 사람을 뜻하고 있어 가장 치욕적으로 여기는 단어가 바로 치킨이다.
그러나 국민의 복지와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담보로 펼쳐지고 있는 시퀘스터 치킨 게임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누군가는 치킨의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퀘스터를 해결할 ‘치킨’의 등장을 미국민은 원하고 기다리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