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절벽’ 그 벼랑 끝에 매달린 채 새해를 맞았던 미국은 눈앞까지 닥쳐온 ‘시퀘스터’ 토네이도를 불안해하며 봄을 맞고 있다.
이것이 끝도 아니다. 현행 잠정 예산안이 만료되는 한 달 후까지 의회가 요즘처럼 손 놓고 있으면 연방정부 폐쇄가 불가피해지고, 초여름에 접어들 무렵엔 다시 부채한도 증액협상 결렬로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에 직면할까, 우려해야 한다.
줄줄이 다가올 연방예산 ‘재난’은 천재지변이 아니다. 매번 똑같은 이슈를 놓고 똑같은 주장으로 양보 않고 버티는 워싱턴 정치권 치킨게임의 와중에서 대통령과 의회,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략에 따라 ‘제작된’ 인위적 재난이자 본의 아니게 조작된 위기다.
9월말로 끝나는 연방정부 2013회계연도 내에 850억 달러 예산이 자동 삭감되는 시퀘스터가 내일부터 발동한다. 집과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날아가는 강력 토네이도가 될지, 간판 몇 개 부수는 작은 회오리로 끝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아직 하루가 남았으니 기적 같은 초당적 타협으로 재정절벽 때처럼 기사회생할 가능성도 형식상으론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이번 시퀘스터의 애초 목적은 시행이 아니다. 보다 효과적인 적자감축안 마련을 부추기기 위한 인센티브였다. 하원 공화당이 상당한 적자감축 없이는 부채한도를 올리지 않고 국가 디폴트까지 불사하겠다고 버티던 2011년 여름, 양당이 난항 끝에 합의한 예산통제법의 한 부분이었다. 적자감축안을 작성할 수퍼위원회를 설립하고 만약 수퍼위가 시한 내 타협을 못할 경우 ‘향후 10년간 1조2천억 달러 예산 자동삭감’이라는 시퀘스터 발동을 조건으로 첨부한 것이다. 전후사정 보지 않고 무작위로 칼날을 휘두르는 일괄삭감이다.
그러므로 시퀘스터는 수퍼위가 타협에 성공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재난적 결과’를 전제로 도입한 ‘위협용’ 대비 장치였고 당시는 오바마도, 공화당도 실제 시행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설마”가 지금 눈앞의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경제회복과 국가안보, 그리고 개인의 일상에 타격과 고통을 주게 될, 자신들이 만든 ‘재난’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막을 수 있는 기간이 1년 넘게 있었는데도 그동안 워싱턴의 아무도 막기 위해 앞장서지 않았다.
재정절벽이 금년 예산전쟁의 1라운드였다면 시퀘스터는 2라운드다. 오바마는 첫 번째 승세를 몰아 이번에도 승리를 다짐하고, 공화당은 이번엔 우리도 질 수 없다고 벼르고 있다.
지난 몇 주 오바마는 대폭 삭감의 심각한 타격을 강조하며 의회에 해결책 마련을 압박했다. 평소 주장대로 증세와 삭감을 병행하는 적자감축안을 통과시키든지 시퀘스터 발동을 몇 달 다시 연기하라는 제안이다. 여론이 자신의 편임을 확신하는 대통령은 선거 유세하듯 홍보순회를 계속하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국경경비와 공항보안에서 조기교육과 노인급식, 국립공원과 육류검역에 이르기까지 연방서비스 무차별 감축의 타격을 강조하는 오바마의 경고를 과장된 겁주기 작전으로 비난하면서도 후폭풍을 우려했던 공화당은 최근 점차 발동을 받아들이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전 국민의 세금이 올라갈 뻔 했던 재정절벽에 비해 대상 범위가 한정적이라 여론의 반응이 뜨겁지 않은 데다 공무원의 무급휴가는 30일 전에 통보해야 하니 서비스 감축의 파장을 체감하려면 한 달 이상이 걸릴 것이므로 예상보다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앞으로의 예산 전쟁인 3라운드 정부폐쇄나, 4라운드 디폴트보다는 시퀘스터 발동의 후폭풍이 덜 할 것이라는 분석도 작용했을 것이다.
공화당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사실 여론은 시퀘스터에 큰 관심이 없다. 너무 복잡한 데다 체감지수도 낮아 퓨리서치센터 조사의 응답자 중 29%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답했다. 의회 공화당은 오바마보다 인기가 훨씬 낮지만 공화당이 강조하는 적자감축에는 70%가 지지를 표했다.
문제는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극히 이율배반적인 민심이다. 퓨조사에 의하면 적자감축엔 절대지지하면서도 그 감축 시행을 위한 지출 삭감엔 반대한다. 19개 정부서비스 항목 중 어느 분야 삭감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48%가 해외원조 예산을 줄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소셜시큐리티는 물론이고 이번 시퀘스터 대상에 들어있는 교육과 메디케어 포함 16개 항목에 대해선 지출을 줄일 게 아니라 늘려야 한다고 응답했다.
종잡기 힘든 민심의 진의를 이리저리 측정하며 대통령과 공화당은 전략을 수정해 나갈 것이다. 내일이 지나면 예산전쟁 3라운드가 시작될 새로운 전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다. 3월27일 만료되는 현행 잠정예산안에 이은 연장안을 둘러싼 대결이다.
그 싸움의 언저리에서 시퀘스터 충격을 완화시킬 해결책이 마련될 지도 모른다. 새 잠정예산안의 일부로, 혹은 별도법안으로, 혹은 시행연기 합의로…그러다보면 5월이 오고 다시 부채한도 증액협상을 둘러싼 격전의 전선이 형성될 것이다.
엄청난 적자 감축의 상식적 해결책은 지출삭감과 증세의 적절한 병행이다. 그러나 양측은 설득과 경청, 양보와 타협이라는 초당적 합의의 기본을 던져버린 지 오래다. 앞으로도 국익보다 정파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힘겨루기는 계속될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취약한 경제와 국민의 고통을 볼모로 삼는 정치지도자들의 버티기 교착상태를 1년 내내 지켜보아야 하나…국민의 실망과 피로가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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