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역대 왕 중 최악의 군주를 꼽는다면 누구일까. 역사를 보는 시각에 따라 그 선택기준은 다를 수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선정에서 빠질 수 없는 후보의 하나는 제 14대 왕 선조(宣祖)가 아닐까.
정치 행위에서 잘못된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는 때로 재난에 가까울 수 있다. 때문에 결과에 대한 신중한 판단을 중시하는 책임 윤리가 특히 중요한 것이 정치다.
산림(山林)을 기용하는 등 나름 개혁을 추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에 있어 조선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참담한 화를 불러왔다. 당시 인구의 20% 이상 살육당한 임진왜란이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선조는 조선조 최악의 군주라는 평가는 상당히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아이러니는 이 선조의 치세기(1552년~1608년)가 조선조 사상 가장 제제다사(濟濟多士)한 시대였다는 사실이다. 이황, 이이, 기대승 같은 거유(巨儒)에, 유성용, 이산해 같은 경륜의 정치인들이 선조시대 인물들이다.
이순신, 곽재우 같은 명장들도 이 시대 사람들이다. 그뿐이 아니다. 정철, 허균 등 문인에서 의성(醫聖)으로 추앙을 받는 허준에 이르기까지 어찌 보면 정치 사회 각 부문에서 조선조를 대표할 만한 인재들이 대거 배출된 때가 선조의 치세기다.
선조가 최악의 군주로 평가되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어쩌면 그럴 수가’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인물은 철저히 배제된다. 그리고 횡행한 것이 측근정치다. 리더십의 실패, 다른 말로 해 인사(人事)의 실패가 그 원인인 것이다.
당시 선조의 신뢰가 가장 두텁던 군부인사는 신립과 이일이었다. 이들의 실력은 그러나 병란 발생과 함께 곧 드러난다. ‘어이없는 졸전 끝에 전사와 망신스러운 도주’가 바로 그들이 보여준 것의 전부였다. 이순신은 완전한 아웃사이더였다. 곽재우 같은 인물은 아예 재야인사였고. 조선을 외침의 병란에서 구해낸 것은 그러나 이 아웃사이더들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렇지만 “…더라면”이란 가정법을 구사하고 싶은 것이 선조의 치세기다. 다른 것은 고사하고 하다못해 ‘이순신 같은 인물을 보다 일찍 발탁했더라면’하는 한탄으로만 이어지게 되는 오욕의 역사가 선조의 치세기다.
여러 가지 기록을 동반한 새 정부의 출범이다.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다. 아버지에 이어 딸이 대통령이 됐다는 것도 진기록이다. 마초문화에 길들어진 동아시아다. 그 동아시아지역에서 최초의 여성대통령 정부가 출범하는 것이다.
그런데 환호의 소리는 그리 크게 들리지 않는다. 쇄신과 변화의 분위기도 감지되지 않는다. 기대감이 높지 않다고 해야 할까. 제 18대 박근혜 정부출범을 앞두고 전해지는 분위기다.
“지나온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막연한 기분이 지배하고 있다.”- 한 국내 논객, 그것도 진보가 아닌 보수파로 분류되는 논객의 새 정부를 맞는 감회다. 무엇이 이토록 분위기를 가라앉게 하고 있는 것인가.
대통령에게는 인사(人事)가 메시지다. 성공한 대통령이 될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박근혜의 인사에 그런데 국민들이 벌써부터 실망이다. 때문에 박수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권교체는 두 단계로 이어진다. 선거가 첫 단계다. 두 번째는 인선을 통한 정부구성이다. 선거는 국민의 몫이지만 정부구성은 승리자의 몫이다. 그러나 그 정부구성이 승리자의 자의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사실상의 선출’에 가깝다.
민주 정부는 정당 정부다. 때문에 새로운 정부구성에 있어 항상 요구되는 것이 대표성과 책임성이다. 그 인선과정은 그러므로 공개성과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정치적, 사회적 대표성을 지닌 인물이 그 인선 대상이다. 때문에 사실상 아래로부터 ‘반(半)선출과 위로부터의 반(半)임명’의 결합이 새 정부를 구성하는 대통령의 인사라는 것이 정치학자들의 지적이다.
그 인선이 그런데 출발부터 뒤틀렸다. 먼저 국무총리 지명에서 실패했다. 극소수에 의해 위로부터 비밀리에 선택되고 갑자기 공개되는 인사로 일관했다. 그 인사는 그리고 검증이 무시된 홀로 하는 인사였다. 그 결과는 18대 대통령 정부의 ‘지각 출범’이다. 그 근본원인은 결국 박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와 직결된다는 게 하나같은 지적이다.
“모든 걸 혼자 결정하려 든다.” “폐쇄적이고, 수직적, 경직적 지시구조로 돼 있다.” “견제와 균형이 상실됐다.” “일방통행식의 관료주도형 정부가 될 것 같다.” “말이 탕평책이지 왕의 시각에서 전권을 휘두르겠다는 인사다.”
박근혜식 인사에 쏟아지는 비난들이다. 그것도 대선 때 박근혜의 우군역할을 했던 보수언론들로부터. 48%의 국민은 여전히 차가운 시선을 던지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이 정치이니까 특히. 박근혜 정부를 향한 솔직한 염원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 가지 단서가 따르는 것이 아닐까. “이제부터라도 겸허한 리더십을 발휘한다면‘이라는. 18대 박근혜 대통령 정부 출범-그게 어쩐지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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