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유학생의 아들인 흑인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끝나자 쿠바 이민의 아들인 히스패닉계 연방 상원의원이 야당의 공식 반박연설을 시작했다 - 지난주 연방의회에서 펼쳐진 2013년 국정연설의 장면을 통해 변화하는 미국, ‘이민의 나라’ 미국의 면모는 이렇게 한눈에 드러났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4년 전에도 오바마의 첫 국정연설에 공화당 대표로 반대연설에 나선 것은 인도 이민의 아들인 동양계 주지사였다.
지난해 대선 패배 후 자신감 상실과 내부 분열로 고전하는 공화당에도 밝은 미래를 꿈꾸게 하는 정치적 자산은 있다. 젊은 차세대 인재들이다. 이들 중 2016년 대선 예비후보로 꼽히는 상위 5위권의 40대주자 세명 가운데 두명이 이민2세다.
41세 동갑내기 마르코 루비오 연방 상원의원과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 차기 대선 예비주자일 뿐 아니라 공화당의 체질개선을 위해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공화당의 ‘젊은 피’다.
요즘 한창 뜨는 스타는 루비오다. 오바마를 제외하곤 현재 워싱턴에서 미디어가 가장 관심 갖는 대상 중 하나다. 그는 ‘공화당의 버락 오바마’로 불린다. 4년 전엔 미국 내 최연소주지사로 당선된 진달이 그렇게 불렸었다.
실제로 루비오에겐 오바마와 닮은 점들이 있긴 하다. 역경을 딛고 성공한 개인사도 그렇고 정치 입문의 배경도 유사하다. 루비오도 오바마처럼 주의회에서 출발했다. 마이애미 법대를 졸업하고 28세에 플로리다 주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으며 36세 때 주 하원의장으로 선출되었다. 2010년 플로리다 주 연방상원 공화경선에 출마한 그는 당시 전국을 휩쓸었던 티파티 물결에 실려 당시 현직 주지사로 중도성향인 찰리 크리스트를 누르고 승리한 후 크리스트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후보까지 3자대결을 벌인 본선에서도 압승을 거두었다.
연방상원에 입성한 루비오는 ‘티파티의 황태자’답게 강경보수임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이민부터 예산에 이르기까지 주요이슈에서 민주당과 정면으로 맞섰다. 애리조나의 인종차별적 이민단속법을 공개 지지했을 뿐 아니라 드림법안도 반대했었고 재정절벽 협상안에도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루비오는 극우기질을 요란스럽게 드러내는 다른 티파티 의원들과는 달리 강경발언을 자제하며 겸손한 자세로 일관했다. ‘가장 리버럴한 상원의원’ 중 하나였던 오바마가 ‘초당적 정치 변화의 기수’로 유권자에게 어필했듯이 ‘가장 보수적 상원의원’ 중 하나인 루비오도 일반 유권자들에게 젊고 매력적이며 정확하고 합리적인 이미지로 인기를 얻고 있는 중이다.
팀 루비오는 요즘 ‘루비오 브랜드’ 개발에 여념이 없다. 이미지 업그레이드와 전국 모금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풀가동에 들어갔다. 1년 전 “공화당은 불법이민 반대당이 아닌 합법이민 장려당이 되어야한다”고 연설하면서부터 공화당 이민개혁 추진의 중앙무대로 들어서고 개혁추진 ‘초당적 8인방’에 합류한 것도 루비오 브랜드 개발의 한 단계일 것이다.
지난 주 반박연설에서도 ‘중산층’이란 단어를 16번이나 써가며 자신이 미트 롬니와는 다른 보통사람임을 강조했고 공화당 지도부의 바람대로 공화당은 부자들의 정당이 아닌 “언젠가 부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의 정당”이라는 것을 심으려 애썼다.
연설보다는 평소 빈틈없는 그답지 않게 꿀꺽대며 급히 물 마시는 루비오의 모습이 더 큰 화제를 모으기는 했지만 연설자체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으며 물병 해프닝을 재치있게 활용한 루비오 후원조직은 하루만에 10만달러를 모금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공화당의 구세주” “레이건 이후 최고의 소통의 달인”…부풀려 쏟아지는 찬사는 본인도 어지러울 지경이다. 붕 떠오른 구름 위에서 추락하지 않으려면 이미지를 넘어 구체적 정책과 깊이 있는 철학을 제시할 수있어야한다. 그것이 당장 루비오가 직면한 도전이다.
포괄적 이민개혁안 추진은 그런 의미에서도 루비오에겐 리더십을 평가받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민계 표밭과 티파티 표밭 사이에서, 가족을 기억하는 온정과 정치의 기본인 법치 사이에서 타협점을 끌어내야 한다. 그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휴머니티와 리얼리티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전당대회 스피치에서 루비오는 호텔 메이드 어머니와 바텐더 아버지가 고생하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다. “하루 16시간씩 일하던 아버지는 언제나 방의 맨 뒤쪽 바에 서 있었다. 언젠가는 그의 아들인 내가 방의 맨 앞쪽 연단에 설 수 있도록. 뒤쪽의 바에서 앞쪽의 연단으로 올 수 있었던 여정이 미국의 기적이다. 나만의 스토리가 아니다. 여러분의 스토리, 우리의 스토리다”
이민의 아들 루비오에겐 워싱턴의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균형잡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뉴욕타임스의 선거분석가 네이트 실버는 루비오가 당의 신뢰를 받을 만큼 “충분히 보수적”이면서도 일반유권자에게도 어필할 만큼 “상당히 인기가 있는” 현재의 상태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정치적 재능을 가졌다면 2016년 ‘당선 가능한 보수’로 기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2016년 대선을 향한 양당의 ‘보이지 않는 경선’은 이미 시작되었다. 앞으로 4년, 루비오도, 진달도 정상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할 것이다. “이민표밭을 잡아라”는 과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똑똑하고 야심찬 이민2세들은 수십년 반이민을 고수했던 공화당에서도 대표주자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루비오, 진달, 그리고 오바마 뿐이겠는가. 언젠가는 이철수나 김영희라는 이름의 한인2세들도 유망한 대선주자로 각광받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날은 우리 스스로가 미국을 “내 나라”로 절감하는 날이 빨리 오면 올수록 함께 빨리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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