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효정 (회생 한의원 원장)
한의학에서는 인체를 소우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계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그대로 인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파악한다.불기운, 물기운, 나무기운, 흙기운 금속기운으로 상징화된 다섯 가지의 변화의 기운과 화기, 냉기, 바람, 습기 건조함, 더운 기운 등의 자연현상들은 그 나름의 속성을 지닌 채 자연세계 형성하는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현상과 요소들이 적정하게 조화를 이루었을 때 자연계는 우리에게 자비롭고 평화스러운 세계가 된다.
반면 적정과 조화를 잃게 되면 그야말로 재앙과 혼란의 상태가 된다. 같은 원리로 우리 내부에는 자연계와 같이 불기운, 바람기운, 찬 기운 더운 기운, 습기, 건조한 기운 들이 존재한다. 너무 추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한의학은 조직과 세포를 분석하는 서양의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을 파악한다. 한의학은 직관적으로 기 혹은 에너지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이해한다.
불은 자연계에서 화력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듯이 화(fire)의 기운은 인체내부에서도 힘을 발생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과도하고 균형을 잃어버린 불이 자연계에 대재앙을 일으키듯이 우리 내부에서도 화 기운은 참사를 일으킬 수 있다. 스트레스는 우리 내부에서 쉽게 과도한 화의 에너지를 형성한다. 스트레스, 분노 등으로 형성된 화의 에너지는 마치 불길이 번지듯이 우리내부를 태운다. 이때 모든 오장육부에 악영향을 주지만 특히 가장 쉽게 공략하는 장부는 심장과 간이다.
한 중년 남성이 칼로 찌르는 듯 한 같은 흉통과 두근거림 불면증 등을 호소했다. 직장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다.
말 그대로 그의 심장은 불타고 있었다. 심화를 끄는 침을 시술 받으면서 그는 몇 번이고 가슴이 후련해진다. 시원해진다고 표현했다. 그 후 그는 더 치료를 받고 불면증과 제반증세로부터 해방되었다. 오랫동안 남편과의 불화로 화병을 앓아온 한 중년여성은 가슴이 답답하고 어깨와 목 이 뻣뻣해지는 통증과 심한 편두통에 시달려왔다. 또한 눈도 건조하면서 시큰거리며 충혈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 여성 역시 불면증을 호소했다. 이 증세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욱 악화되었다. 이 경우는 과도한 화 기운이 심장과 간 둘 다를 태우고 있는 상태이다. 그녀의 경우도 심장과 간의 화 기운을 끄는 치료를 받고 모든 증세가 소멸되었다.
나는 그들의 가슴을 건드리지도 않았고 그녀의 눈 근처도 만지지 않았는데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다만 나는 그들의 심장과 간의 화 기운을 내리는 시술만 했을 뿐이다. 한의학에서는 인체의 모든 부분은 오장육부라는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이기 때문에 어떤 문제이든지 그 원인을 ‘오장육부’라는 뿌리에서 찾아야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경우도 흉통이 있다고 가슴만을, 눈병이 있다고 눈만을 집중하는 것은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 남성이 수년전부터 녹내장을 앓아왔다. 수술까지 했지만 안압이 일시적으로 떨어졌을 뿐 곧 다시 올라 시신경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 분 역시 간화가 주원인이었다. 간화를 다스리며 간을 강화 시키는 시술을 받고 안압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느린 속도였지만 잘 견뎌내어 수개월이 지난 후 부터는 정상적인 안압을 유지하고 있다. 이 경우 역시 나는 문제의 원인인 간화에 집중했을 뿐 눈 주위에는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많은 이들이 기운이 없다며 혹은 자신의 손발이 차기 때문에 몸이 차다며 삼 종류, 생강, 계피 등을 즐겨먹는다. 그런 경우라도 위의 증상들이 있으면 대부분 속에 화가 내재하여 있다고 보고 그런 약물들은 삼가하고 한의사와 상담 후 복용할 것을 권유한다.
수족 같은 부위가 냉하지만 오히려 상부에는 열이 많은 경우도 흔히 있다. 한열이 균형을 잃고 특정 부위에 몰려 있을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이 세상의 어떤 약도 만병통치약은 없다. 약이 약성을 발휘하는 것은 그 개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잘못사용하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어떤 약이 만병통치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약은 개성이 없기 때문에 약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잘못된 상식으로 속에 화가 잔뜩 찬 분들이 위의 종류들을 먹고 병을 키우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가 없다. 이런 경우에 소화 장애가 없다면 국화차나 박하차등을 마시면 열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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