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베토벤(1770~1827·사진)의 제5번 교향곡 ‘운명’을 듣는 것은 일종의 의식적 반복행위다. 그래서 LA필이 이 곡을 연주할 때면 난 다시 그 행위를 하게 된다. 물리지도 않느냐고. 천만에. 에디 아놀드의 노래를 계속해 들어도 물리지 않듯 ‘운명’도 그렇다. 다소 무례한 얘기지만 ‘운명’은 내겐 클래식 팝과도 같다.
‘타 타 타 타’하며 시작되는 ‘운명’은 노교수의 노트처럼 오래되고 반복해 연주되면서 과다 노출된 음악인데도 들을 때마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힘을 지녔다. 특히 제4악장은 듣는 사람의 피를 거꾸로 흐르게 하는데 마치 스릴러를 읽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전율을 느끼게 된다. 베토벤의 전기 작가 에드먼드 모리스도 “‘운명’ 교향곡의 피날레에서 오케스트라가 완전히 해방 될 때는 목 뒤의 모든 잔털들이 일어선다”고 말했다.
척 베리와 비틀스도 베토벤의 인기를 시샘했을 만큼 베토벤의 음악은 시공을 초월해 모든 인류에게 만유한다. 이들은 ‘롤 오버 베토벤’에서 라디오 DJ에게 편지를 써서 베토벤을 집어치우고 로큰롤과 리듬 앤 블루스를 틀어달라고 요청하겠다고 악을 써댔다.
베토벤의 음악이 이렇게 인기가 있는 것은 그가 가혹한 질병과 운명에 철저히 저항한 투사이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베토벤은 인간을 위해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요 니이체의 ‘초인’으로 그의 음악은 바로 이런 인간성의 표현이라고 하겠다.
베토벤의 음악은 무엇보다도 자유에의 억제치 못할 충동의 소산이요 그의 예술의 첫째 조건은 영혼과 느낌 그리고 직접적이며 근접한 삶이었다. 이런 충동과 조건이 한껏 드러난 음악이 ‘운명’이다.
특히 ‘타 타 타 타’ 하는 시작 음과 그 뒤의 선율은 하도 유명해 팝과 디스코로도 편곡됐다. 스케이팅 영화 ‘아이스 캐슬’에서는 디스코로 편곡된 이 음악이 멋지게 사용됐다. 그리고 이 시작 모티브는 모스 부호로 V를 뜻해 2차 대전 때 승리의 징표로 쓰였다. 이것은 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에서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베토벤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그가 권위를 혐오하는 민주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반기를 들었듯이 베토벤은 음악가를 하인 정도로 취급했던 귀족들 알기를 우습게 여긴 혁명가였다.
나는 지난 2006년 비엔나를 방문, 중앙묘지의 베토벤 무덤 앞에 섰었다. 감격 일색이었다. 이어 그가 청각장애가 심해 자살을 생각하면서 유서를 쓴 비엔나 인근의 하일리겐슈타트의 베토벤 숙소를 찾아갔었다. 베토벤이 32세 때인 1802년에 쓴 유서는 청각상실로 인한 고뇌와 자살 의도를 얘기하며 그러나 오로지 자신의 예술에 대한 임무 때문에 자살 유혹을 극복한다고 적고 있다. 난 그 때 베토벤이 걸었을 집 앞의 보리수 길을 거닐면서 그의 고뇌와 고독을 잠시 생각했었다.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얘기는 프랑스의 거장 아벨 강스가 만든 불후의 걸작 ‘베토벤의 삶과 사랑’에서 자세히 그려졌다. 베토벤으로는 프랑스의 명우 하리 바우어가 나온다. 또 게리 올드맨이 베토벤으로 나오는 ‘임모탈 빌러비드’도 베토벤의 사랑을 묘사한 훌륭한 영화다.
내가 베토벤의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음악 선생님이 가르쳐준 제9번 교향곡 ‘합창’의 제4악장에 나오는 ‘환희에의 송가’다. 우리는 “찬양하라 노래하라 창조자의 영광을”하면서 열심히 베토벤을 노래했었다.
그런데 ‘합창’의 제4악장은 스탠리 쿠브릭의 신랄한 사회 비평영화 ‘클라크워크 오렌지’에서 패륜아인 주인공(말콤 맥도월)에 대한 일종의 고문수단으로 쓰여진다. 사회 부적응 자에 대한 물리적 치유책이긴 하지만 쿠브릭(그의 회고전이 오는 6월30일까지 LA카운티 뮤지엄에서 열린다.)의 고약한 블랙 유머감각이 느껴진다. 이 4악장은 이밖에도 브루스 윌리스의 ‘다이 하드’ 시리즈에도 사용됐다.
베토벤의 음악은 많은 영화들이 빌려다 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자주 쓰이는 것이 제7번 교향곡의 제3악장. 이 악장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공상과학 영화 ‘노잉’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됐다. 또 션 펜이 나오는 ‘리처드 닉슨 암살’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제5번 ‘황제’의 제2악장이 나온다.
‘운명’이 25일(오전 11시)과 26일(오후 8시) 두 차례에 걸쳐 다운타운의 디즈니 컨서트 홀에서 LA필에 의해 연주된다. 지휘는 프랑스의 뤼도빅 몰로. ‘운명’은 에마누엘 액스가 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제25번과 프랑스의 현대 음악작곡가 앙리 뒤티예의 상실에 관한 우울한 명상인 관현악곡 ‘시간의 그림자’와 함께 연주된다. 내일 나는 또 ‘운명’을 반복하려고 한다.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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