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악마다. 지옥에나 가라.”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한 말이다. 그것도 유엔총회 연설에서. 그 차베스가 요즘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암으로 사경을 헤매면서. 그의 위독설과 함께 중남미 일대가 술렁거리고 있다. 이 지역의 정치지형이 크게 흔들릴 수 있어서다.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것은 서방제국주의의 음모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주장이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통째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린다. 그러면서 유럽에 대해 마구 채찍을 휘두른다. 러시아의 푸틴이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토록 기고만장하게 하고 있나. 석유다. 원유 값이 배럴당 20달러 이하일 때에는 조용했다. 60, 80, 100달러로 치솟으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높아져만 갔다.
이 현상과 관련해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은 일찍이 ‘석유정치 제 1법칙’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산유국들의 원유 값 상승과 자유의 진전은 반비례한다는 가설이다.
석유 값이 낮을 때 산유국 지도자들은 납작 엎드린다. 국제여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국내 반대파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유가가 오르면 정반대의 행태를 보인다. 다른 나라 눈치를 보지 않는다. 국내 반대파에 대한 탄압도 가중된다.
이 ‘석유정치 제 1법칙’에 뒤이어 프리드먼이 제시한 것이 ‘석유의 축’이론이다. 90년대 이후 국제 원유 값은 치솟기만 했다. 이와 함께 새로운 세력으로 대두한 것이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권위주의 형 산유국들이다.
‘에너지를 확보하라’- 이 지상과제에 볼모가 됐다. 때문에 권위주의 형 체제의 산유국에 대해 국제 사회는 아첨을 한다. 그 결과는 자유의 후퇴다. 부패의 만연이고, 독재체제의 강화다.
이들 나라에 오일 머니가 쌓일수록 국제사회 전체의 시스템은 왜곡된다. 세계의 안정성이 위협 받는다. 따라서 내려진 결론은 ‘악의 축’보다도 이 ‘석유의 축’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석유를 장악하면 세계를 장악한다’-. 19세기가 석탄경제 시대라면 20세기는 석유경제 시대로, 에너지원으로서 석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그 석유 전선, 더 넓혀 세계의 에너지 전선에 그런데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전 세계 에너지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앞으로 도래 하는 시대는 ‘저가의 에너지 풍요시대’로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등 몇몇 메가 급 에너지 공급국들이 주도하던 시대가 끝나면서 세계의 지정학적 질서에 변화가 올 것이다.” 포린 어페어지의 지적이다.
이와 함께 포린 어페어지는 앞으로 5~10년 사이 권위주의 형 에너지 수출국의 위상은 국내외적으로 크게 약화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 변화의 진원지는 미국이다. 1948년 무렵부터 그 기술의 개념은 이론적으로 정립됐었다. 그 기술이 경제적으로도 채산이 맞도록 실용화돼 개발 된 것은 5년 전이다. 수평시출-수압파쇄라는 첨단의 기술이다. 지하 깊숙이 묻혀 있는 셰일(shale-頁巖) 속에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이 기술로 캐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불과 5년이란 기간 동안 이 새로운 기술이 이뤄 낸 성과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막대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되면서 천연가스가격은 75%나 떨어졌다. 이와 함께 자동차 연료의 혁명도 예상된다. 가솔린에서 값이 저렴한 농축가스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천연가스를 주원료와 연료로 사용하는 제조업, 예컨대 플라스틱, 케미컬, 비료 공장들- 주로 중국에 아웃소싱 한 이 제조업들이 미국으로 되돌아오면서 수많은 직업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에너지사장의 판도변화는 이제 전 세계로 파급돼 경제적 차원을 넘어 국제정치구도를 바꾸어 놓을 태세다. 그 변화의 물결을 권위주의 형 산유국들은 두려움 속에 바라보고 있다. 주로 석유, 천연가스를 팔아 체제를 유지해왔다. 가격하락으로 그 재정충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소련제국이 붕괴한 주 원인의 하나도 원유 값 폭락에서 찾을 수 있다. 1980년대 말부터 국제 원유 가는 폭락을 거듭, 소비에트 연방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1991년 12월 무렵에는 배럴당 17달러 선으로 주저앉았다.
오일 쇼크를 계기로 미국이 1977년부터 2011년까지 중동에 투입한 군사비는 9조 달러로 전체의 50%를 훨씬 넘는다. 그 중동석유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는 한 때 30%에 육박했다. 현재는 22%정도이고 머지않아 제로가 될 전망이다.
무엇을 말하나.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중요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셰일가스와 석유가 에너지시장을 잠식하게 되면 중동지역은 더 가난해지고 이 지역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전망이다. 에너지시장의 판도변화와 함께 중동의 권위주의 형 산유국들은 또 한 차례 혁명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미국은 올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산유국이 될 것이다.” 영국의 에너지기업 BP의 최근 전망이다. 2013년은 또 한 차례 격변의 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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