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한지 한 달째인 1월14일, 아직 슬픔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코네티컷 주 뉴타운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무참히 희생된 20명 아주 작은 아이들과 그들을 보호하려다 숨진 6명 선생님을 추모하며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한 캠페인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희생자의 부모들, 그들의 아픔을 같이 느끼는 이웃 부모들이 함께 만들어 이날 출범시킨 비영리 단체 ‘샌디훅의 약속(Sandy Hook Promise)’은 먼 훗날까지 뉴타운이 악몽의 현장 보다는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 곳’으로 기억되기 원했다. 이들은 정신건강과 학교안전 그리고 ‘총기 책임’을 비롯하여 “우리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모든 해결책에 대해 전국적으로 대결 아닌 ‘대화’가 이루어지기를 촉구했다.
활짝 웃는 여섯 살 딸의 사진을 끌어안고 “두 번 다시 어떤 부모도 이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 바란다”며 울음을 삼키는 아나의 엄마, “우리 사회에 무언가 고쳐야할 게 있다면 그걸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 부모들”이라며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 벤의 아빠, 정신질환연구를 위한 추모재단 설립을 알리며 다시는 못 보게 된 어린 딸 ‘아비엘’의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던 아빠는 “아름다운 그 애를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30년간 미국에서 발생한 62건의 총기난사 사건이 그랬듯이 샌디훅도 흐르는 시간과 함께 잊혀지면서 역사의 페이지 속에 그저 묻혀버릴 것을 이들은 두려워했다. 상당수가 총기 소유주로 아직은 총기문제에 대한 입장정리도 못했을 만큼 슬픔과 고통이 생생하지만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은 더 이상 우리의 옵션이 아니다”라고 이들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1996년 3월 영국 스코틀랜드 던블레인 초등학교에서도 유사한 총기사건이 발생했다. 정신이 약간 이상한 40대 남자가 체육관에 침입해 4자루의 권총을 난사, 16명의 아이들과 교사 1명을 살해하고 자살한 이 사건은 영국을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아픔을 딛고 일어선 희생자 부모들과 더블레인 주민들은 개인의 권총소지 금지 캠페인을 시작했다. 3월에 피는 작은 하얀 꽃의 이름을 따 ‘스누우드롭’으로 명명된 캠페인을 통해 75만명의 서명을 받은 청원서는 이듬해 개인의 권총소유 전면금지 입법화의 동력이 되었다.
1996년 4월, 이번엔 호주의 관광지 포트아서에서 대량 살상사건이 발생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28세 청년이 관광지 곳곳을 휩쓸며 대용량 탄창을 부착한 반자동 소총을 무차별 난사했다. 한 식당에선 90초간의 연속발사에 22명이 사살되는 등 35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당했다.
호주정부의 대응은 신속하고 강경했다. 정치권은 사건발생 12일 만에 초당적으로 총기규제 강화에 합의했으며 1년이 채 안되어 공격용 무기 및 대용량 탄창의 개인소지 금지를 포함한 총기규제 대폭강화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이전 18년 동안 13건이나 발생했던 호주의 대량살상 총기사건은 그 후 지금까지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게 영국과 호주에서의 비극은 용기를 불러 변화를 실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수많은 비극을 겪으면서도 변화를 거부해온 미국의 총기문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1996년 당시 호주의 존 하워드 수상은 “우린 미국의 질병(총기 집착)이 호주로 수입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경고했고 지난달 샌디훅 사건 후 영국의 가디언지는 사설을 통해 “총기폭력 측면에서 보면 미국은 실패한 국가”라고 규정짓기도 했다.
어제 오바마 대통령이 ‘드디어’ 총기규제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바이든 부통령의 태스크포스가 지난 몇 주 동안 다각적 연구조사와 관련 회의를 통해 작성한 보고서를 토대로 한 종합적인 총기폭력 대응책엔 대통령의 행정명령만으로 시행이 가능한 23개 항목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핵심은 3가지 - 공격용 총기의 판매 금지, 한번에 10발 이상 연속발사되는 대용량 탄창의 판매 금지, 그리고 모든 총기거래에 대한 신원조회 확대(현재 총기구입의 40%에 해당되는 개인거래에는 신원조회 규정이 적용되지 않고있다) - 의회의 입법화가 필요한 사안들이다.
샌디훅을 계기로 총기규제 강화 지지 여론은 확실하게 조성되어 있지만 의회로 넘어가면 기류가 달라진다. 앞을 막아선 정치적 장애들이 규제강화 실현의 험한 여정을 예고한다. 막강로비로 워싱턴을 위협해온 총기협회는 새로운 규제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상태이며 공화당은 대놓고 반대하고 중간선거를 우려하는 보수지역 민주당 의원들도 쉽게 찬성표를 던지지는 않을 태세다. 벌써부터 양극화 찬반논쟁이 소란스럽다.
샌디훅 사건 며칠 후 호주의회의 켈리 톰슨 의원이 미 의회에 총기법 채택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내왔다. 1996년의 호주 체험을 설명하며 “총기숫자 감소와 함께 사망도 줄어들었다…총기소유가 안전을 지켜준다는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그는 미국의 의원들을 향해 말했다. “세계에는 의원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문제 중 하나가 아닙니다”
뉴타운 기자회견에서 6살 아들이 선생님 품에 안겨 숨졌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로 받으려한다는 젊은 엄마는 다른 부모가 그런 위로를 받는 “다음번은…절대 없기를 바란다”고 자신의 ‘샌디훅의 약속’을 말했다.
설사 새로운 총기법이 통과된다 해도 난사사건을 확실하게 막거나, 공격용 총기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건강 검사 강화, 학교 안전조치 확대 등과 함께 시행된다면 새로운 규제강화법은 앞으로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 생명 중 하나가 내 가족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총기규제 강화는 샌디훅의 ‘약속’ 실현을 향해 내딛는 확실한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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