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몇 번째 일까. ‘아시아시대’가 새해의 화두로 던져 진 것이. ‘21세기는 아시아 시대다-. 20세기가 그 끝자락을 내보이기 전부터 제시된 거대담론이다. 세계의 부와 파워의 동진(東進)과 함께 미국의 세기는 끝났다. 그리고 새로 시작되는 것이 아시아 시대라는 거다.
아시아시대 담론이 피크를 이룬 때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을 한 2008년 무렵이다. 마침 열린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의 거대한 제전(祭典)에 세계는 경이의 시선을 던지면서 아시아시대의 도래를 기정사실인 양 받아들였다.
‘아시아시대’란 말은 그러나 이제 진부한 용어가 되어가고 있다. 뭔가 실체가 잡히지 않아서다. 동시에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질문은 ‘아시아시대는 허상인가’ 하는 것이다.
아시아시대에 노란 불이 켜졌다. 아니, 아시아시대란 말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아시아의 정치가 과거회귀의 퇴행증세를 보이면서 나오는 진단이다.
“중화민족주의의 부흥이야말로 당에 부여된 사명이다.”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의 선언이다. 중국의 군사력을 강화하겠다는 다짐이다. 중화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고취하고 있다. 동시에 평화굴기의 가면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내보인 것은 잔뜩 찌푸린 오만한 얼굴이다.
그 중국이 이제는 아시아의 안보딜레마가 됐다. 이와 함께 대항적 민족주의 바람을 몰아오고 있다. 그 정황에서 탄생한 것이 일본의 아베정권이다.
아베정권은 일본을 군국주의 권위주의 형 체제로 변모시키려는 것이 아닐까. 극우인사들이 대거 등용된 ‘아베 내각의 색깔’과 관련해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우려다.
세계 2위와 3위의 경제대국, 다시 말해 아시아시대를 주도할 중국과 일본이 영토와 과거사문제로 가파른 대결국면을 조성하면서 아시아시대 그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는 하나의 문명권이 아니다. 미국세기, 대영제국, 더 멀리 로마제국. 그 시대마다 세계를 주도한 보편적 문화가 있었다. 아시아시대를 알리는 보편적인 문화내지 문명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이 점에 있어 상당히 회의적이다. 아시아시대란 말은 때문에 개념설정부터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시아에는 모델로 제시될 국가 형태가 존재하고 있는가. 아시아 문화, 아시아적 가치관 문제와 함께 던져지는 또 다른 질문이다.
유럽연합(EU)은 여러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는 전 유럽이 공유하는 가치관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 인권존중 등의 가치관이다.
왕국에서 세습독재체제, 민주체제 국가 등이 혼재해 있는 것이 아시아다. 이 아시아에서 모델이 될 수 있는 나라는 그러면 어느 나라일까. 중국일까. 싱가포르일까. 모두 불합격이다. 하나같이 독재체제란 점에서. 일본은 그러면. 민주체제다. 그 일본은 그러나 점차 1당 체제화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식민통치와 침략의 욕된 과거를 정리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다른 한 나라에 쏠린다. ‘불가능의 나라’(The Impossible Country), 다른 말로 해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이다. 지난 64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는 한마디로 세계사적이다. 과거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140개국) 중 경제발전, 과학기술 선진화, 정치선진화를 동시에 이룩한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 대한민국이 요즘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강남스타일의 리듬이 전 세계로 번져나가면서 한국의 성공사례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했나. “무엇보다도 개방성과 투명성 그리고 확고한 법치(法治)로 특징지어지는 민주화다.” 빅터 차의 지적이다.
타임지도 같은 진단을 내렸다. “민주화는 개방성과 다양성을 가져오고 그로부터 배양된 한국의 창조정신은 브랜드 국가로서 코리아, 문화수출 본산지로서의 코리아를 가능케 했다.”
여기에서 새삼스레 한 가지 질문이 떠올려진다. ‘아시아시대가 온다면 그 주역은 그러면 대한민국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15세기 이탈리아의 피렌체 베네치아 중심의 르네상스가 오늘의 근대문명을 결정했다. 이제 한반도 안에서 절박하고도 급박하게 새로운 세계문화의 기본 틀이 만들어질 것이 요구되고 있다.”
김지하의 말이다. 구구히 통계 숫자를 늘어놓지 않았다. 미래 학자를 인용하지도 않았다. 시인(詩人)의 직관이랄까, 이를 통해 민족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보편적 감흥을 불러내는 한국문화 심층에 새겨져 있는 유전자를 꿰뚫어 보았다. 그러면서 한국시대를 예언한 것이다.
곰삭음, 발효, ‘시김’이야 말로 한국문화의 원형으로, 삶의 비극성과 고단함을 삶에 대한 총체적 긍정, 다시 말해 신명으로 뒤바꿔내는 것을 발효, ‘시김’으로 파악한 것이다.
새해다.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은 새해 시작과 함께 새로운 리더십 시대를 맞게 됐다. 여성 리더십시대다. 그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잘 곰삭음’이 아닐까. 다른 말이 아니다. 통합이다. 모두를 끌어안고 함께 고통을 이겨냄으로써 신명나는 공동사회를 이룩해야 한다는.
모성(母性)의 따뜻한 가슴으로 부둥켜안는다. 그럼으로써 갈등을 털어내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간다. 그런 여성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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