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1월1일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선언문이 발효된 지 150년이 되는 날이다. 남북전쟁 중이던 1862년 9월22일에 링컨이 서명한 그 문서는 미합중국에 반역하여 교전 중에 있는 버지니아 등 남부 여러 주에 노예로 묶여 있는 모든 사람들이 1863년 1월 1일로 자유롭게 되었음을 선포한 것이다. 노예제도가 얼마나 악랄했었던 지를 단편적으로나마 짐작해 보기 위해 ‘오십년 동안 쇠사슬 생활 또는 미국 노예 한 사람의 일생’이란 제목의 찰스 볼이란 노예의 자서전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어른으로 성장한 볼은 메릴랜드에서 노예 공매장 경매를 통해 조지아 주로 팔려가게 된다. 그를 산 새 주인에게 아내와 자식들을 가기 전에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더니 조지아에서 다른 아내를 얻으면 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볼을 산 새 주인은 노예 중간 도매상으로 남자 노예 32명과 여자 노예 19명을 육로를 거쳐 조지아 주로 운반하면서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여자들은 동아줄로 묶었지만 남자들은 족쇄로 묶어 쇠사슬로 연결시켰으며 두 명씩 수갑을 채웠다. 자기 아내와 자식들을 영영 못 볼 설움에서 죽는 게 낫다 싶었지만 죽기도 어려운 짐승보다도 못한 생지옥의 행진이었을 것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컬럼비아 부근쯤에서 일행을 만난 깡마른 백인 하나가 아이 잘 낳는 여자 노예들을 사겠다고 노예 도매상에게 말한다. “우리들을 찬찬히 살펴본 다음 그는 임신해서 배가 부른 여자 둘의 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우리의 주인은 그 둘이 메릴랜드 전체에서 가장 아이들을 많이 낳는 노예들이라면서 그중 하나는 22세인데 이미 일곱 아이들의 엄마이고 또 하나는 19세인데 네 아이들의 엄마라서 한 사람 당 1,000달러도 싼 것이지만 일행을 따라오기 힘들어 하니까 두 명에 1,200달러를 받겠다고 설명했다…(흥정하다가).…1,000달러에 낙착되었다.”
노예 소유주들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여자 노예들을 겁탈했을 뿐 아니라 그래서 생겨난 자기 자식들을 또 노예로 팔아먹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이 적지 않았다. 남자 흑인들은 자신의 부인이나 딸들을 백인들의 야욕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는 절대 모멸감과 더불어 목화밭에서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참으면서 온종일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조금만 쉬는 기색을 보여도 감독의 채찍으로 등가죽이 찢어지는 고초를 당했으니 노예 제도가 얼마나 비인도적인 만행이었는지 가히 짐작이 된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노예해방선언문의 영향은 엄청났을 것이라 짐작된다. 링컨을 ‘위대한 해방자’라고 흑인들이 부른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링컨 자신은 개인적으로는 노예 제도를 증오하면서도 대통령이 되어서는 법질서와 체계 아래서의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심각한 고뇌를 거친 다음에야 선언문을 발표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노예로 있던 사람들은 북부군 점령으로 해방되었을 때의 큰 혼란을 느꼈으며 장래에 대한 불안도 적지 않았다는 게 역사의 기록이다. 몸은 자유가 되었지만 농사지을 땅이나 장사할 돈이 한 푼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식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느냐가 큰 당면 문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연방정부에서 해방된 노예 한사람 당 ‘40에이커와 나귀 한 마리’를 주겠다는 정책발표가 있었지만 실천에 옮겨지지 않았다.
또 노예 해방을 ‘미국에서 출생한 모든 사람들은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있다’는 연방 헌법 수정 제13조에서 명문화함으로 흑인 남성들에게는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그리고 한 동안 흑인 연방 의원들마저 존재하는 ‘재건 시기’가 있었던 것도 잠깐, 남부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흑인들의 참정권은 법으로 박탈되었었다. 흑백 차별과 분리가 합법이라는 대법원의 판례가 1954년까지 지속되었고 흑인 투표 보호는 1964년에 가서야 이루어졌으니까 노예해방선언문의 실질적인 결실을 보는데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이다.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또 그들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한 후속 조치를 연방 의회를 통하여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래 링컨이 고민하면서 헌법 수정 제13조의 통과를 추진하기 위해 연방 의원들을 설득 회유시키는 모습을 잘 그렸다는 스필버그의 링컨 영화를 보는 것이 나의 다음 숙제이다.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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