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대선 결과가 발표된 후 보수의 리더들은 처져있는 진영을 향해 외쳤다. “기운을 내자, 선거결과는 끔찍하지만 오바마의 압승도, 공화당의 참패도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재정절벽 추락을 모면한 워싱턴의 새해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극적인 막판 협상의 ‘승자’인 백악관의 표정이 활짝 밝은 게 아닌 것만큼 ‘패자’인 공화당의 분위기도 절망은 아니다. 재정절벽이 결국 민주·공화 양당의 극단적 기싸움이 빚어낸 ‘워싱턴 산(産) 위기’였다면 싸움은 올 한해 내내 계속될 것이고 어느 한쪽도 영원한 승자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수증대만이 아니라 균형예산과 적자감축까지를 포함하는 빅딜이 아닌 임시방편 스몰딜이기는 하지만 워싱턴 새해 첫 힘겨루기의 승자는 일단 오바마 대통령이다. 어쨌든 2012년 대선캠페인의 대표공약인 부자증세를 2기가 시작도 되기 전에 실현시켰다. 그것은 20년 고수해온 공화당의 ‘증세 불가’ 깃발을 꺾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완승과는 거리가 멀다.
유권자의 분노가 두려워 어쩔 수없이 물러서긴 했지만 공화당도 얻은 게 없지는 않다. 연소득 44만 달러의 고소득 가구도 ‘중산층’에 포함시켜 감세혜택의 대상으로 보호했으며 민주당이 다음 회계연도까지 시행연장을 원했던 대규모 예산 자동삭감을 두 달 후로 당겨놓았다.
예산전쟁은 지금부터다. 첫 싸움이 바로 눈앞에 있다. 양당이 치킨게임을 벌이며 미국을 부도국가로 전락시킬 뻔했던 2011년 7월의 연방부채상한 증액 협상을 기억하는가. 그 부채한도액을 2월말까지 다시 올려야 한다. 다시 국가 디폴트 사태를 볼모로 삼는 극한의 결사적 대결이 재연될 것이다. 그리고 공화당은 이때를 스몰딜에서 성사시키지 못한 메디케어와 소셜시큐리티 등 사회보장성 복지프로의 개혁과 예산삭감의 기회로 삼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두 번째 임기의 첫해인 금년에 자신의 ‘역사적 유산’으로 남길 주요 어젠다 실현을 별러온 오바마에겐 심각한 문제다.
재선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는 ‘2기의 저주’라는 용어가 생겼을 만큼 어려운 시기다. 닉슨의 워터게이트와 레이건의 이란-콘트라, 클린턴의 모니카 르윈스키 등 스캔들 때문만이 아니다. 재선대통령으론 그중 선방했다는 아이젠하워도 강력하게 추진했던 포괄적 민권법안을 포기하고 ‘남부의 분리주의자들까지 찬성표를 던진’ 물탄 버전을 받아들여야 했다.
두 번째 임기의 대통령은 다시 선거를 치를 필요가 없어 훨씬 행보가 자유로울 수 있지만 그의 주변엔 당선 첫날부터 레임덕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의회에 대한 영향력은 계속 약화된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의 의원들도 대통령에 맞서는 것을 크게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두 번째 임기 4년 모두를 자신의 어젠다 추진의 시기로 잡기는 불가능하다. 국내정책은 길게 잡아도 첫 2년에 승부를 내야하고 후반엔 외교정책에 집중하는 한편 여론조사보다는 역사의 평가에 더 많은 생각을 하며 ‘품위 있는 퇴장’을 준비해야 한다.
오바마도 최우선 과제의 목표를 결정하여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갈 길은 바쁜데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다. 공화당은 이제 곧 내분을 끝내고 2014년 중간선거를 위한 전열 재정비에 나설 것이며 중간선거가 끝나면 모든 관심은 2016년 대선주자들에게 쏠릴 것이다.
두 번째 출범을 앞둔 오바마의 정치 환경도 잔뜩 흐려있다. 그는 이미 2008년에 공약했으나 1기 때 실현 못한 미완의 과제들을 2기의 주요 어젠다로 강조했다. 경제안정과 함께 이민개혁과 에너지 자립, 그리고 지난 연말 샌디훅 초등학교의 참극으로 재부상한 총기규제 - 모두 보수 공화당과 날카롭게 대립각을 빚어온 논쟁 이슈들이다. 공화당과의 초당적 합의가 없이는 절대로 입법화하기 힘든 과제란 뜻이다.
‘초당적 합의’는 그 기미조차 안 보인다. 1기 때 사사건건 반목하며 불신의 골이 깊어진 공화당과의 관계를 치유하며 새롭게 화해의 시대를 선언해도 시원치 않을 상황인데 새해벽두부터 예산싸움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일부 백악관 참모들이 이번 재정절벽 협상에서의 오바마 승리를 기뻐하기보다는 “정치적 자산을 낭비한 위험한 딜레마”로 우려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통령 역사학자 더글러스 브링클리는 “모든 대통령은 루즈벨트의 소셜시큐리티, 트루먼의 CIA, 아이젠하워의 고속도로, 케네디의 달 착륙 등 대표적 업적으로 기억된다”면서 역사적 측면으로 보면 오바마는 이미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했다고 말한다 : 첫 흑인대통령, 헬스케어 개혁, 오사마 빈라덴 사살, 2개의 전쟁 종식, 그리고 어려운 경제여건에서의 재선 성공…
그러나 “난 재선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재선된 것이 아니다”라며 ‘2기의 저주’를 일축한 오바마의 야심은 그보다 크다.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는 대통령에게 부여된 파워는 “국가의 방향을 정하는 권리”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큰 정부, 작은 정부를 떠나 ‘스마트한 정부’라면서 2017년 초 백악관을 떠날 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경제가 모든 사람에게 폭넓은 번영을 이루도록 기초를 닦기 위해, 21세기 내내 국제적으로 미국의 리더십이 계속될 수 있기 위해, 국가라는 배의 키를 잡아왔다”
순탄한 항해를 빈다.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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