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는 의료용 마리화나만을 허용하고 있지만 비의료 목적으로 이를 사용하는 인구가 급속히 확대되는 추세다.
할리웃에서 토팽가 캐년에 이르는 지역에 어둠이 스며들면 어김없이 마리화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타지에서는 흔히 칵테일 시간으로 통하는 어스름한 저녁녘, 상당수의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한 잔의 술 대신 손 담배처럼 둘둘 말아 놓은 마리화나를 피운다. 집 뒷마당에서 이들이 피워대는 연기는 사방으로 흩어지며 독특한 냄새로 주변 공기를 가득 채운다. 캘리포니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마리화나 사용은 `합법’이다. 물론 법조문상으로 마리화나는 “의료적인 목적”으로 사용이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이 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가주에선 비의료용으로도 대중화 공공연한 비밀
베벌리힐스 가정집 손님들에게 칵테일 권하듯 권해
상류층·유명인사들 끽연층“더 이상 마약 아니다”
당국선 잊을만 하면 단속… 합법화 운동 `휴화산’
가주의 마리화나 사용은 뉴욕의 거리음주와 비슷하다.
뉴욕의 예술인 밀집촌으로 널리 알려진 그리니치 빌리지의 주민들은 개방된 공공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술을 마신다. 경찰은 이 지역의 애주가들이 술병을 봉지에 넣어 들고 다니며 아무 곳에서나 한 모금씩 들이킨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못 본 척 눈감아준다.
가주의 비의료용 마리화나 사용 역시 널리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다. 베벌리힐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일부 가정에서는 주인이 저녁식사에 초대한 손님들에게 식전 칵테일을 권하듯 마리화나를 권한다.
캘리포니아는 전국에서 가장 강력한 금연법을 시행중이다.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웠다간 벌금폭탄을 맞게 된다. 벌금도 무섭지만 그보다 주변의 싸늘한 눈총이 더 무섭다.
그러나 지난 9월 할리웃보울의 야외 콘서트 참여자들은 관객석 위로 구름처럼 드리워진 마리화나 연기에 전혀 불평을 토로하지 않았다.
지난주 웨스트 할리웃의 투루바도에서 열린 마운티 고츠 콘서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할리웃보울이 툭 터진 야외무대인 반면 투루바도는 폐쇄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은 포연처럼 자욱한 마리화나 연기를 묵묵히 견뎌냈다.
가주의 마리화나 애호가들 중에는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지위를 갖춘‘ 지도층 인사’들과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유명인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이와 관련,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부지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인사들이 마리화나를 피운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뉴섬은“ 이 양반들은 대단히 올곧은 시민들이자 빼어난 커뮤니티의 지도자들”이라며 “아무래도 마리화나 사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추세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매일 아침 베니스는 사방에서 여러 명이 한꺼번에 내뿜는 마리화나 연기로 가득 찬다”며“ 이 때문에 애연가들은 따로 조인트(마리화나)에 불을 붙일 필요 없이 그저 숨만 들이 쉬면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매일 아침 베니스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슈워제네거는 “거기서 심호흡을 하면 신선한 공기 대신 마리화나 연기가 폐 속 깊숙이 빨려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슈워제네거는 주지사 시절 소량의 마리화나 소지를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시킨 장본인이다.
일부 캘리포니아 인사들은 마리화나를 일종의 마약으로‘ 착각’하는 타지인들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다.
TV 사회자인 빌 메이허는 지난해 할리웃 유명 에이전트인 수 멩거스가 타계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가 스타 연예인들과 잘 나가는 언론인들을 초청해 떠들썩한 잔치판을 벌일 때마다 난 마리화나를 구해 전해 주었다”고 털어놓고“ 그런데 알고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더라”라고 말했다.
의외의 발언에 깜짝 놀란 취재기자가“ 이런 이야기를 그대로 내보내도 되느냐”고 묻자 메이허는 한심하다는 듯이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곳은 캘리포니아고 지금은 2011년”이라며 신랄한 어조로 되받았다.
민주당 캘리포니아지부 회장인 존버튼은 한때 가주에서도 마리화나가 마약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버튼은 그 당시만 해도 마리화나 담배 한 개비를 갖고 있다 적발돼 기소되면 샌 퀜틴 형무소에서 단기 2년, 장기 20년의 중형을 언도받곤 했다며“ 지난 40년간 캘리포니아에서 이루어진 가장 눈에 띄는 대중의 두 가지 태도 변화는 마리화나와 동성애 권리에 대한 사고의 변화”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에 마리화나가 어느 정도 만연됐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캘리포니아 교통안전국은 지난달“ 술에 취한 채 운전을 하는 음주 운전자보다 마리화나에 취한 상태에서 차를 모는 운전자들의 수가 더 많을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마리화나가 합법화 되지 않은 탓에 분명한 한계가 따른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에게 맥주 대신 대뜸 마리화나를 권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사람들도 언론매체에 그들의 실명이 공개되는 것을 몹시 꺼린다.
마리화나 흡입이 광범위하고 공공연하게 이루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현행 연방법은 의료용 마리화나조차 합법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기사에 실명이 언급될 경우 경력에 금이가는 등 불이익을 당할까 두렵다는 얘기다.
연방 법무부는 가끔씩 기습적인 마리화나 단속을 통해 캘리포니아 주민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려 시도한다. 법무부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마리화나에 관한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태도가 어떻게 바뀌었건 연방법에 따라 이를 불법행위로 다스릴 것”이라는 경고다.
마리화나는 베니스와 버클리를 중심으로 지난 1960년대 이래 음성적으로 ‘문화적 존재감’을 키워왔다. 60년대만 해도 주변 문화에 불과했던 마리화나는 1996년 주민투표를 통해 의료용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후 주류문화를 향해 급속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의료용 마리화나의 합법화가 가져온 변화도 적지 않다. 우선 마리화나를 입수하기 위해 굳이 기존의 마약 거래인들과 얽힐 필요가 없어졌다. 의료용 마리화나 취급 매장이 많이 생겼을 뿐 아니라 적어도 표면적으로 의료용 목적으로 마리화나를 재배하는 친구, 혹은 친구의 친구를 통해 확보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일부 사용자들은 이로 인해 품질도 믿을만해졌고 등급도 다양해졌다고 말한다. 다른 무엇보다 마리화나 구입으로 마약조직에 자금을 지원해주는 꼴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줄어들었다. 가격 역시 전국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낮아졌다.
한편 뉴섬 캘리포니아 부지사는“ 마리화나의 급속한 확산은 시대에 뒤떨어진 현행 관련법이 불러온 역효과“라며 “지금이야말로 정치인들이 마리화나 합법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차기 캘리포니아 주지사 1순위 후보로 꼽히는 뉴섬 부지사는 마리화나 합법화를 지지하지만 자신은 “사용자”가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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