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흥미롭다. 예기치 못한 사태가 터지고 또 그것이 또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미국 역사에 그런 뜻밖의 결과를 가져온 영국 왕이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미국인이 잘 알지도 못하는 제임스 2세다. 영국 왕 중 유일하게 신하들에게 잡혀 참수된 찰스 1세의 두 번째 아들인 그는 형 찰스 2세가 사망한 후 영국 왕이 되지만 자기 아버지가 의회를 무사하고 제멋대로 하다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비슷하게 굴다 1688년 딸과 사위가 일으킨 ‘명예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난다.
그가 쫓겨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의 하나가 프로테스탄트 교도의 무기 소유를 금지한 것이다. 이들을 무장 해제시켜 갈수록 신교화 되어가는 영국을 다시 가톨릭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얕은 수작이었지만 이는 오히려 국민 다수의 반발을 불러 자신이 축출되는 계기가 된다. 명예혁명 후 제정돼 영국 최고의 법률 문서가 된 ‘권리장전’은 모든 영국민의 무기 소유권을 보장하고 있다.
영국민들이 건너와 세운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들은 그 전통을 이어받아 시민들이 무기를 소지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더구나 하루하루 인디언들과 싸우며 스스로 생존을 지켜야하는 절박한 현실 때문에 누구도 이것이 인간의 기본권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각자 자기 총으로 무장한 민병대가 미국 독립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국민의 총기 소유권은 헌법적 권리로까지 보호를 받게 된다. 수정 헌법 제2조는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 국가의 안전에 필요함으로 국민의 총기 소유 및 사용권은 침해받을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영국의 권리 장전이 총기 소유권을 “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미국 헌법의 총기 소유권은 아무 제한 조항 없이 절대적이다. 미 라이플 협회(NRA)를 비롯한 총기 로비가 어떠한 형태의 총기 규제도 반대하는 것은 이에 근거한 것이다.
이 헌법 조항과 강력한 총기 로비 덕에 집단 살해 사건이 수없이 되풀이 돼도 총기 규제는 공염불로 끝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 지난 번 대선에서도 리버럴인 오바마나 보수파 롬니 누구도 이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지난 주 코네티컷의 조그마한 마을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로 20명의 초등학생 포함 27명이 죽는 참사가 발생했다. 범인 애덤 랜자는 자신의 생모까지 죽이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 현장에서 자살했는데 그에게 약간 자폐 성향이 있었다는 것 말고는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그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이 터진 후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 규제의 필요성을 새삼 강조했는데 이런 대형 참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총기 규제법이 제정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1999년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로 15명이 죽고 24명이 다쳤을 때, 2007년 버지니아텍에서 조승희가 32명을 죽였을 때, 올 7월 콜로라도 오로라의 한 극장에서 역시 총기 난사로 12명이 죽고 58명이 다쳤을 때 총기 규제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68년 로버트 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 암살 사건을 총기 규제의 기회로 보고 총기 우편 판매 금지와 미성년자 판매 금지법을 성사시킨 린든 존슨 대통령은 암살 직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기껏 2주, 어쩌면 열흘”이라며 신속한 통과를 서둘렀다. 시간이 지나면 총기 로비에 막혀 또 좌절될 것을 내다본 것이다.
헌법이 총기 소유를 보장하고 있더라도 지금은 인디언이나 무법자와 개인이 맞서 싸우던 서부 개척 시대가 아니다. 이번처럼 정신이상자의 손에 총기가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합법적 규제 장치를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필요하다.
이번 사건은 희생자 대부분이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이번에도 총기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미국에서 이는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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