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정말 ‘포괄적 이민법 개혁’이 실현될 수 있을까. 몇 차례나 가슴 설렜다 좌절당한 지난 몇 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이민사회로선 새로운 희망에 다시 가슴 설레면서도 한편으론 기대를 갖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워싱턴 정가에서 오랫동안 뒷전으로 밀려났던 이민개혁 입법에 청신호가 켜졌다. 11월 대선결과가 안겨준 선물이다. 백인 유권자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도 이민 표밭의 압도적 거부로 무너져버린 미트 롬니의 참패를 보면서 공화당의 기류가 변한 것이다. ‘친이민’까지는 모르겠지만 공공연하게 과시해온 ‘반이민’ 기세가 슬며시 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첫 번째 임기 때 공약을 지키지 못한 오바마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의 최우선 과제로 이민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거듭 약속했고, 넉달 전만 해도 초강경 반이민정책을 정강으로 택했던 공화당의 수장 존 베이너 연방하원의장도 “이민개혁은 시급히 처리해야할 주요 과제”라며 ‘열린 마음’을 감추려하지 않는다.
새해 1월과 2월 오바마의 취임사와 국정연설에서의 이민개혁 추진 공개 선언, 소셜 미디어와 풀뿌리 조직 통한 여론조성, 연방의회 관련 분과위 청문회 개최 등 예상 일정들도 나와 있고 이민 ‘전문가’를 자처하는 의원들도 다투어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만이 아니다. 5년 만에 처음으로 공화당에서도 이민개혁에 관한 진진한 논의가 시작되려고 한다.
포괄적 이민개혁안이 마지막으로 표결에 부쳐졌던 것은 2007년이었다. 요즘의 공화당 지도자들과는 달리 이민들의 가족중심 가치관과 근면한 직업윤리관을 높게 평가하며 존중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앞장서 지지했던 2006년의 포괄적 개혁안은 20여명 공화당 의원들의 적극 가세로 상원을 통과했지만 당시 반이민 기세가 등등했던 하원에서 폐기되었다. 보수진영이 강조하는 국경강화, 재계가 필요로 하는 임시 초청노동자 프로, 이민사회가 원하는 기존 서류미비자 신분합법화 등을 모두 포함시켜 민주당의 에드워드 케네디와 공화당의 존 매케인이 공동작성한 초당적 합의안이었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고 상하 양원의 다수당으로 등극한 민주당은 2007년 다시 포괄적 개혁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이번엔 보수의 압력으로 초당적 연합이 무너지면서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2008년, 오바마의 당선과 함께 백악관과 연방의회를 장악한 민주당 천하가 도래했다. 그러나 이민개혁은 아예 추진조차 되지 않았다. “자녀들만이라도…” 구제해달라는 애타는 호소가 담긴 드림법안조차 2010년 겨울, 죽여 버렸다.
지난 5년 이민개혁은 논쟁 이슈로서의 입지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사면 절대불가”를 외치는 원내외 보수파의 거센 반대로 공화당 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도 가능하면 피해왔던 어젠다가 이민개혁이었다. 그런데 새해엔 너도나도 지지하려는 “뜨는 이슈”로 부상하는 반전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민개혁의 전망은 ‘쾌청’이 아니다. 특히 서류미비자들의 신분합법화가 포함될 ‘포괄적’ 개혁은 더욱 그렇다. 추진에서 표결까지의 입법절차 중 넘어야 할 장애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화당은 사분오열 갈라진 내부 의견부터 조율해야 한다. 특히 2년 후 백인보수 지역구에서 다시 경선부터 치러야 할 의원들의 반발을 잠재우기는 힘들 것이다. 개혁안 추진 방법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공화당의 이민개혁 대변인”으로 불릴만한 두 상원의원 중 젊은 보수파 마르코 루비오는 초청노동자 법안, 드림법안 등으로 쪼개서 성사시키는 분리 추진방식을 주장하고 원로 중도파 존 매케인은 민주당의 기류 등을 감안하며 포괄적 법안이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있다. 공화당이 아무리 깎아내려도 오바마가 첫 임기 때 실현시킨 헬스케어 개혁법은 지난 수십년 역대 대통령들이 시도했다 못 이룬 역사적 과업이었다. 포괄적 이민개혁도 다르지 않다. “오바마에게 또 한 번의 역사적 성취의 기회를 주어야 하는가” - 이민개혁 입법이 가까워질수록 공화당은 고민에 빠질 것이다.
민주당에도 고민은 있다. 노조와의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한다. 신분합법화에 의한 노동력의 대거 양산이 민주당의 최대지지층인 노조와 상당부분 이해 상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이민개혁 약속을 못 지킨다면 이민사회는 민주당에 대한 무조건의 지지를 철회할 것이다. 반드시 실현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서둘러야 한다. 아직 공화당이 대선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이민개혁에 기꺼이 동참하려고 하는 이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언제 또 종래의 사사건건 ‘아니요(NO!)당’으로 돌아갈지 모를 일이다.
재정절벽 협상이 마무리되면 워싱턴은 본격적으로 이민개혁 모드에 접어들 것이다. 20여만 한인들을 포함한 1,100만명, 숨죽이며 그늘에서 살던 그들이 햇빛 밝은 세상으로 걸어 나올 수 있는, 그런 날들이 펼쳐지는 새해를 기다린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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