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의 해가 바야흐로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지난 11월 미국 대선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드라마로 귀결됐고, 한국 대선은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의 격돌이 이제 열흘 하고 이틀이 지나면 결판이 난다. 19일 한국 선거일에 앞서 미국 등 해외에서는 역사적인 사상 첫 대선 재외선거가 지금 실시되고 있다. 아직 현재진행형인 한국 대선을 지켜보며, 이미 결과가 나온 미국 대선을 반추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오바마의 승리로 끝난 이번 미국 대선 이후 가장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은 공화당 내에서 다급한 ‘이민 개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선 이후 연방 의회에서는 공화당 의원들이 발의한 ‘어치브 법안’이 상정됐다. 미국내 불법 체류 신분 청소년들을 구제하는 내용으로 ‘공화당 판 드림법안’이다. 이에 앞서 대선 직후에는 의회내 공화당 수장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이민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동안 ‘티파티’에 휘둘려 강성 궤도로 치달리던 공화당이 벼랑 끝을 보고 화급히 브레이크를 잡아당기고 있는 느낌이다.
이는 이민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4년 후인 오는 2016년 대선에서 백악관 탈환이 사실상 힘들다는 것은 물론, 장래의 존재 기반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절박한 인식이 공화당 내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화당의 위기의식이 변화의 조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바로 ‘히스패닉과 아시안 표의 힘’이다. 선거 후 통계에 따르면 지난 11월 미국 대선에서 히스패닉 유권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10%, 아시안은 3%였다. 대략적으로 계산을 해보자. 지난 11월 미국 대선에서 투표장에 나와 표를 던진 유권자수가 1억2,700만명 수준이다. 이 히스패닉과 아시안 유권자의 비율을 합치면 13%이니 이번 미국 대선에 참여한 이 두 그룹의 표가 대략 1,600만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선거 후 출구조사에서 나타난 오바마와 롬니 지지 성향은 아시안 유권자들의 경우 73대 26, 히스패닉은 71대 27이었다고 하니 70% 이상의 압도적 지지표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와 롬니의 총 득표수 차이가 450만여표였던 것을 감안하면 박빙의 선거에서 히스패닉과 아시안 유권자들의 표심이 곧바로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했다는 뜻이 된다.
특히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선택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행한 불체 청소년 추방유예 조치에 대한 롬니 후보의 반대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이니 공화당이 대선 후 황급히 불체 청소년 구제 법안을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포괄적 이민 개혁에도 협조할 수밖에 없어 빠르면 내년, 아니면 다음 대선 이전에 미국내 불체자 대규모 구제를 포함한 이민 개혁이 성사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는 것이다. 이게 모두 ‘히스패닉 표의 힘’의 작용이다.
이같은 분위기 때문에 이민 개혁이 공화당의 협조로 순풍에 돛단 듯 쉽게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는 의견도 물론 있지만, 미국 대선 후 대세 전망은 그렇게 가고 있다.
그렇다면 ‘재외 한인 표의 힘’은 어떨까.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 등록을 한 해외 한인의 수가 22만을 조금 넘는다. 히스패닉 표처럼 ‘보팅 블록’을 형성하기에는 그리 많지 않은 숫자로 보일수도 있지만, 표의 힘은 표를 행사하는데서 나온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외투표에 유권자들이 많이 참여할수록 앞으로 재외한인들의 한 표 한 표가 갖는 무게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첫 재외투표였던 지난 총선 때는 등록자수도 기대에 못 미쳤고 투표율도 절반을 넘지 못했다. 등록과 투표를 불편하게 만드는 선거법상의 제약 탓도 크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번 선거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재외선거의 투표율이 올라갈수록 다음 선거에서 재외선거 규정들이 개정되고 한국 정치인들이 재외국민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 투표용지에서 어느 후보를 찍는 것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할지는 유권자마다 다르겠지만, 최악의 선택은 분명하다. 나의 한 표를 행사하지 않고 그냥 버리는 것이다.
<김종하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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