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의 존 베이너 연방하원의장이 안팎으로 몰리고 있다. 감세혜택 제한을 통한 8천억달러 규모의 세수확충을 포함시킨 그의 재정절벽 협상안은 “부자 증세가 빠졌다”고 반대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만 거부당한 것이 아니다. “실질적 부자 증세”라며 성토하는 공화당내 보수파의 비판 압력 또한 보통 거센 게 아니다.
협상실패로 재정절벽에서 추락하면 “공화당 탓”이라는 여론이 53%에 달하는 데도 “세금임상은 절대 안 된다”는 극우세력의 반대는 완강하다. 여기에 더해 베이너가 새 하원 주요 분과위원회에서 극우파들을 제외시켰다 해서 “보수의원 ‘숙청’한 베이너를 해임시키라”는 항의까지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오바마 낙선”이라는 공동목표를 상실한 공화당의 당내 분열이 다시 전국적 조명 속에 드러나면서 보수와 중도가 다투는 소리가 담장너머까지 소란스럽다.
승리여건이 넉넉히 갖춰진 대선에서 패배한 한 달 전부터 공화당은 자기성찰에 들어갔다. 다각적인 패인 분석과 새로운 미래를 위한 방향 제시가 미디어와 포럼, 스피치와 컨퍼런스를 통해 끊임없이 제시되고 있다.
분석과 제안을 근거로 “2012년 대선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상반된 주장들이 맞부딪치면서 앞으로 뜨겁게 전개될 것이다 : ‘허약한 후보’ 미트 롬니를 탓할 것인가, 변화하는 ‘새로운 미국’에 적응하지 못한 경직된 당 체제를 비판할 것인가, ‘아니요’ 당의 오명을 벗고 보다 초당적 자세를 가질 것인가, 더욱 순수한 이념을 고수할 것인가, 기성그룹의 당 지도부와 티파티를 중심한 극우진영은 당의 존립을 위해 타협할 것인가, 드라마틱한 탈바꿈을 위해 충돌을 불사할 것인가…
치열한 논쟁을 통한 공화당의 자기성찰은 아직 한참 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고심 끝에 찾아낸 해답에 의해 재구성될 공화당의 방향은 앞으로 몇 년 미국정치의 변화를 이끌어 갈 중심축의 하나가 될 것이다.
지난 6번의 대선 중 공화당은 5번이나 전국 득표수에서 민주당에게 뒤졌다. 과반수 유권자의 계속되는 외면을 시사주간지 타임은 “공화당이라는 브랜드가 죽어가고 있다”고 표현한다.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의 정당, 흑인의 투표권과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앞장서 싸웠고 국립공원제도 개발과 환경보호청 설립을 실현시키며 자연보호를 선도했고 미 중산층의 가치관을 공유했던 ‘그랜드 올드 파티(GOP)’가 어쩌다 소수계와 여성, 저소득층은 물론이고 중산층에게까지 외면당하는 ‘부자들의 대변자’로 전락한 것일까.
공화당 주지사 연례회의, 대학교수들의 정치포럼 등에서 다양한 분석의 결과가 제시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공통적으로 지적된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은 변화에 대한 적응 실패다.
인구지형이 바뀌고 새로운 문화트렌드가 자리 잡은 미국의 변화에 공화당은 미처 감지하지 못한 때문인지, 혹은 알면서도 방관한 것인지, 대처하지 않았다. 라틴계와 동양계 등 이민들의 새로운 표밭을 확대하기는커녕 강경한 반이민 정책으로 관계 단절을 자초했고 동성결혼 죄악시로 젊은 유권자의 반감을 샀으며 낙태관련 모욕적 정책으로 여성들의 분노를 유발하면서 스스로의 입지를 좁혀왔다.
한마디로 인구변화를 외면하고 문화변화를 무시하면서 표밭을 축소시켜온 것이다. 그러니 가장 시급한 과제인 표밭 확대는 극단적 이념에서 합리적 중도화로, 경직된 낡은 사고에서 유연한 현대화로 이동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문제와 해답이 나왔어도 실행이 쉽지 않은 게 공화당의 현재 형편이다. 이념의 순수화를 계속 추구할 극우보수파와 현대화를 요구하는 실용적 개혁파 간의 거리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 못지않게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구와 문화의 변화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소수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한다면 이번 공화당의 자기성찰은 보다 긍정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공화당의 내일엔 밝은 측면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2016년을 기다리는 젊은 스타들의 후보군이 넉넉하다. 롬니의 ‘47%’와 결별을 선언하듯 엊그제 한 만찬연설에서 ‘가난으로부터의 탈출’과 모든 미국인을 위한 공화당의 ‘온정적 비전’을 강조한 폴 라이언 연방하원의원, 라틴계와의 교량역할을 담당할 마르코 루비오 연방상원의원, 부시가문의 3번째 타자로 가장 유능하다는 젭 부시를 비롯하여 “새로운 미국”을 포용하는 “새로운 공화당”을 강조하는 젊은 피가 가득하다.
또 대선에선 패했지만 주정치에선 공화당이 훨씬 우세하다. 전체 50개중 30개의 주지사가 공화당이며, 주의회가 비당파적인 네브라스카를 제외한 49개주 의회중 27개 주 하원과 28개 주 상원의 주도권을 공화당이 잡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성찰의 결과를 토대로 쇄신하려는 공화당의 의지다. 정확히 4년 전에도 공화당은 뼈아픈 패배를 딛고 심층 분석과 깊은 자성 끝에 ‘인구변화를 수용하고 소수계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다. 오히려 공화당의 반이민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고 롬니는 당시의 존 매케인보다 소수계 표밭에서 더 큰 참패를 당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도 공화당의 몰락을 바라지 않는다. 서로 양극으로 치닫는 교착상태는 혐오하지만 양당의 합리적 경쟁과 견제가 건강한 사회를 끌어가는 동력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록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