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나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전화를 걸어 와, 내 글에 대한 소감과 격려의 말을 전해 주는, 소설가 이동희 형의 “새해부터는 좀더 밝은 글을 쓰시지요” 라는 말과, 근간에는 공식모임에 잘 나가지 않다가 지난 달 3일, 한국일보의 ‘필자 사은의 밤’에 얼굴을 내민 나에게 그도 또한 내 글을 한 회도 빼놓지 않고 읽고 있다는 한국일보 이민규 사업국장이 나에게 다가와서 던져 준 말, “앞으로는 서산에 해 떨어지는 듯한 글을 쓰지 마시고, 해돋이 같은 글을 쓰시지요.” 라는 권유의 말이 내 가슴에 크게 울렸다.
그렇다! 글이란 그 사람이 처해 있는 환경과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반사경이란 말이 있듯이, 지난 한 해 동안 난 다 죽어가는 노인의 신음 소리 같은 글을 써온 게 사실이다.
‘세상은 정으로 살고, 나그네 길은 같이 가는 길벗이 있기에, 멀어 보이지 않는다’ 는 말이 있듯이, 지난 몇 년 사이에 나와 정을 나누던 사람과 또 나와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하여 걸어가던 많은 동행자들이 나를 앞서 저 세상으로 먼저 가버린 서글픔과, 디스코 수술 후에 회복기란 긴 터널을 빠져 나오기 위한 고통 때문에 나는 석양볕을 가슴으로 받으며 초겨울 강변의 갈대밭 길을 걸어 가듯, 우울한 나날을 보냈기에 그런 어두운 글을 썼는지 모른다.
한편 한 해를 마감하는 장막이 서서히 내려가고 있음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내가 살아온 세월의 그 길목마다에 놓치고 온 그 무엇에 대한 아쉬움이 여윈 가슴팍에 파고 들었기 때문에 그런 글을 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지난 날을 돌이켜 보았을 때, 내가 걸어온 그 많은 순간과 그 세월의 여정에서 과연 많은 것을 놓치고만 살아 왔을까? 또 내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내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허탈의 길일까?
아니다! 나무 밑동에 쌓인 낙엽은 지난 가을의 결실의 흔적이듯이, 나는 내가 살아온 그 세월의 길목마다에 뿌린 씨앗에서 꽤 많은 열매를 거두어 바구니 가득 주워 담았다고 자부해야 하지 않을까?
그 값진 열매들 가운데 내가 내세울 게 있다면 그 첫째가 내 작품(동극)이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6편, 음악교과서에 1편, 그리고 준 교과서라고도 할 수 있는 교사용 지도서에 8편, 이렇게 15편이 실려서 성인작가나 아동문학가를 통털어 교과서에 최다 작품 수록 작가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내가 성인문학이나 아동문학 분야에서는 드물게, 아동극 분야란 특수 쟝르의 길을 걸어온 나의 유별난 행적 때문에서인지는 몰라도 내(주평)연구로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도, 석ㆍ박사가 6명(석사 4명, 박사 2명)이나 나왔다는 사실 또한 내가 거둔 또다른 열매가 아닌가 싶다.
한편 세 번째로 내세우고 싶은 열매가 있다면 그건, 내가 수필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5권의 수필집(곧 발간될 다섯 번째 수필집을 포함)에 300편이 넘는 수필을 담아 내었다는 사실이다.
네 번째로는 내가 이민을 떠나오기 전의 우리나라에서와 이민 후, 내가 주관한 연극공연 횟수가 100회가 넘는다는 사실 또한 내가 거두었던 열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섯 번째로 내가 거둔 열매가 있다면 그건 내가 한국에서 창단한 아동극단과 내가 주관한 전국 아동극 경연대회를 통해 국민배우를 비롯하여 10명에 가까운 톱클래스 배우와 탈렌트가 배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늘어 놓음이 내가 지난 날에 거둔 열매의 실상임에도 불구하고, 약해져 가는 한 노인의 과거에 집착하는 허상이나 자랑 내지는, 교만으로 비쳐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의 소년기와 청년기 그리고 장년기를 거쳐, 인생 제4기인 노년기에 접어들어서도 드물게 현역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편, 내 생애 후기에도 보람있게 살다 갔다는 어떤 흔적 하나를 남겨 놓고 가기 위해, 지금도 내가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을 따름이다.
100살 나이에 ‘약해 지지마!’ 라는 시집을 발간하여, 간결하고도 쉬운 일상생활용어의 시어로 많은 사람의 가슴에 감동과 삶의 희망의 불씨를 지펴준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다 도요 시인의 시구처럼 나는 결코 약해질 이유가 없다.
나도 시바다 시인 같이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앞으로도 줄기차게 글을 쓸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듯, 학교 강당에서 옛날처럼 학예회가 부활되어, 내 작품(동극)이 지난 날과 같이 무대에 올려졌을 때 어린이들에게 다시 꿈을 심어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쓰고 있는 글(수필)이 어른들에게는 시바다 시인의 시처럼,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는 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오면 밝은 바깥 세상이 펼쳐지듯이 새해부터는 보다 문학적이고, 해돋이 같은 밝은 글을 내 글 속에 담아 내기를 마음 속으로 다짐하면서, 또 한 해를 마감하는 달의 서산마루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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