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첫 해외주권행사인 재외선거가 12월 5일부터 시작되어 뉴욕한인들도 한국대선 분위기에 휩싸이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세상을 바꾸는 약속’을 했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특권과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겠다’며 서로 ‘우리가 더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현대사를 보면 새 정권이 탄생할 때마다 변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권력을 잡으면 제일 처음 하는 일이 자신을 위해 힘써준 집단에게 상을 주고 힘을 실어주는 일이었다. 얼마 후 권력의 맛에 물든 그들은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한번 실세에 있다가 나오면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사는 기득권자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는 특권과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을 진실로 보고 싶다.
한국 TV 사극을 보면 붕당정치의 거두가 “정치란 그런 것이지요” 하는 대사가 있다. ‘내일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다’ 식의 지조도 절개도 없는,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한 끝에 하는 그 말이 들을 때마다 참으로 거슬렸다.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 대쪽 같은 성정의 정치가를 보고 싶다. 정암 조광조(1482~1519)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공자의 유가 사상을 2000년 후인 1515년 조선에서 실현하기위해 혁신적인 정치를 펼쳤지만 끈질기고 조직적인 훈구세력의 반격으로 역적이 되어 사약을 받고 말았다.
사후 그에 대한 평가는 이상주의자와 개혁정치가로 나눠지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37세 짧은 삶 동안 일편단심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위해 살았다는 것이다.
연산군 폐위 반정에 의해 왕위에 오른 중종은 이상적인 정치를 펴고자 친히 성균관에 거동하여 알성시의 시험문제를 출제했다. 이 알성시에서 급제한 조광조의 문장을 예로 든다.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 됨이 하나이다. 임금과 백성은 그 근본 됨이 하나이다. 옛날에 성인들은 하늘과 땅의 큰 것과 수많은 백성들의 무리를 하나로 여기셨으며, 그런 이치에 따라 도를 행하였다.”
‘하늘의 도로써 정치하라’ 했다.
“대개 사람들은 밝게 드러난 곳에서는 삼가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마음가짐이 소홀하게 마련이다. 때문에 마음가짐이 소홀하게 되어 하늘을 속이고 사람을 속일 수 있다 생각되어 혼자 있을 때는 삼가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안다. 그런 생각이 나라를 다스릴 때도 드러나 마침내 정치와 교화를 그르친다.”
‘혼자 있을 때도 늘 근신하며 군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 한국 대선은 조만간 승자가 나타나겠지만 그 순간부터 바늘방석에 앉아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요즘 읽은 책인 최인호가 쓴 ‘소설 공자’에서 ‘정치란 바로 잡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책에서 가장 공감한 것이 ‘섭공호룡’(葉公好龍)이란 고사성어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노나라를 떠나 유랑하던 시절 ‘섭’이라는 작은 나라에 간 적이 있다. 새로운 권력자인 섭공은 야심가로 은근히 패권을 꿈꾸고 있었다. 섭공은 집안 곳곳에 용의 그림을 붙여두고 침구나 이불, 속옷까지 용을 수놓았다. 천자의 상징인 용을 가까이 하면 더 큰 권력이 자신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섭공이 용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마침내 하늘에 있던 진짜 용이 이 소식을 들었다. 진짜 용은 섭공이 얼마나 자신을 좋아하는 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의 집을 방문한다. 섭공은 용무늬로 장식된 방에 앉아 있다가 진짜 용 한 마리가 창문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들이닥치자 혼비백산 도망치고 말았다. 이는 ‘겉으로는 좋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결코 좋아하지 않는’ 허세를 말한다.
이 용은 백성이다. 겉으로는 자신도 백성인 척, 백성을 위하고 좋아한다면서 실제로는 백성이 뭘 원하는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사는지 몰라라 하고, 아니, 처음부터 백성은 자신이 정권을 잡기위한 볼모였을 뿐이다.
대권 후보들은 너도 나도 소통과 변화, 정치쇄신, 특권층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서로 비방하고 싸우면서 차기정권 획득을 위해 불꽃 튀는 유세전을 펼치는 그들의 마음에 제일 먼저 ‘국민’이 들어가 있기를 기대한다. 국민을 가장 먼저 생각하다가 명예롭게 은퇴하는 전직 대통령과 성공한 정권 하나쯤은 우리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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