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주 사이에 영화 3편을 보았다. 그렇게 짧은 기간 안에 여러편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평소 나의 생활이 바빠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비추어 볼 때 사치스럽다 싶을 만큼 모처럼의 여유였다.우선 곧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기차표 크레딧이 있으니 어디라도 같이 다녀오자는 친구의 제의에 의기투합해 뉴욕을 갔다. 설렁탕과 이른 시간이어서 아쉽게도 막걸리가 빠진 빈대떡을 곁들인 점심, 센트럴 파크에서의 한가한 오후 산책, 맨하탄에서의 무작정 배회를 거쳐 돌아오는 기차 시간을 앞두고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했다. 일단 요즈음 인기 상영 중인 007영화를 보고자 했다. 그런데 기차 출발 시간 전에 관람할 수 있는 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길에서 무심코 건네받은 조그마한 영화 홍보 전단지 앞장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처음에는 콧수염 때문에 누군지 바로 알아채지 못했지만 다름 아닌 장동건 이었다. 전단지를 자세히 보니 ‘위험한 관계’라는 제목의 그 영화는 북미지역 전체에서 상영하는 곳이 겨우 일곱 군데에 불과했다. 한국의 간판배우이자 모든 아줌마들의 ‘오빠’인 장동건을 응원하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이 영화를 안 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실제 이유가 장동건과 호흡을 맞추어 연기를 벌이는 미인 중국 여배우를 좀 더 큰 스크린에서 자세히 관찰하고 싶었다든지 그 중 한 여배우는 최근 중국에서 권력투쟁 겸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보시라이 전 충칭 시 당서기와 염문이 있었다는 루머의 주인공 짱쯔이 라는 것과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어쨌든 고국의 간판 배우를 응원하겠다는 우리의 기특한 생각은 6층짜리 극장 맨 위층의 작은 공간에서 겨우 약 20명 정도가 앉아 관람하는 냉대 속에서 장동건과 그의 여자 친구가 벌이는 사랑과 증오의 무모한 게임을 보게 했다. 그러나 관람 후 뇌리에 계속 떠오르는 것은 본래 응원을 의도했던 장동건이 아니라 여배우들이었음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두 번째 영화는 원래 뉴욕에서 보려했던 007영화였다. 아이멕스 스크린이 좀 더 생동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버지니아 섄틸리에 위치한 우주항공박물관을 찾아갔다. 007 영화는 대학 때 참 많이 보았다. 그 당시 일주일 내내 공부에 시달린 하바드 대학생들이 학교 사이언스센터의 극장형 대 강의실에서 금요일 저녁이면 종종 보던 영화다. 사실 내용이라야 매 영화가 비슷비슷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보내 줄수 있는 스릴 있는 액션과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섹시미를 자랑하는 본드 걸들의 등장이야말로 당시 우리들에게는 일주일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보약이요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이번에 본 007 영화는 아이멕스 극장이기에 영상의 입체감과 음향효과는 뛰어 났지만 전체적으로는 예전의 영화만 못했던 것 같다. 007 영화에서는 누가 뭐라해도 요염한 본드 걸들 중 누군가가 가슴 아프게 죽어야 한다. 그리고 타고 다니는 차가 이번 영화에 나오는 것보다 더욱 우리의 감탄을 자아낼 수 있는 여러가지 장치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번 영화는 액션의 강도도 좀 떨어졌고 영화 끝부분에 죽는 본드의 여자 상사를 과거 007영화에서 죽은 본드 걸들과 비교하기에는 좀 무리인 듯 했다.세 번째 영화는 스필버그 감독 제작의 ‘링컨’이었다. 어디까지가 역사적인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픽션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남북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의회를 통과한 연방수정헌법 13조에 관한 배경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고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에게 얽힌 얘기들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노예해방에 관해 당시 남부는 물론 북부에서도 야당이 반대했다. 또한 막 재선에서 성공한 링컨 대통령의 다수 여당 내에서도 이에 대한 논란이 제법 있었다. 그리고 노예제도 철폐의 이 수정헌법을 통과 시키기 위해 동원되었던 여러 방법들, 미국의 민주정치제도나 정치인들의 도덕성이 내가 생각해 왔던 것과는 거리가 먼듯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토론 과정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수준이나 내용 중에 비속적인 부분도 많아 놀라움을 자아냈다. 더욱이 당시 연방하원 내에서 링컨 대통령의 가장 막강한 우군으로 운영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던 스티븐스 의원이 흑인을 정부(情婦)로 두고 있었던 것도 생각지 못했던 바다. 이 영화는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과 같이 관람하고 토론도 해 볼 수 있는 유익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나에게 두 주 사이에 3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여유가 다시 찾아올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끔 한 번씩 영화관에로의 나들이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3편의 영화 관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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