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9월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유엔군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물밀듯이 38선을 넘어 북진했다.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는 크리스마스 전까지 한국 통일을 완료하고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호언장담했으며 하루속히 압록강까지 진격하라고 독려했다. 서부 전선을 맡고 있던 미 8군은 맥아더의 명령을 충실히 따라 서둘러 압록강에 도달하기는 하지만 중공군의 기습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고 곧 퇴각을 거듭하고 만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부 전선의 주력부대인 미 해병 1사단은 맥아더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명령 불복종에 가까울 정도로 느리게 진군했다. 그 이유는 1사단 책임자인 올리버 스미스 소장이 중공군 개입 낌새를 채고 중간 중간 무기고와 보급 창고를 만들고 비행장까지 건설하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부터 꼭 62년 전인 11월 27일 중공군 정예 12개 사단은 함경도 장진호 인근에서 미군을 포위하고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영하 40도에 가까운 강추위와 험한 산악지대에서 중공군을 맞은 미 해병은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미 공군의 도움으로 중공군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히며 흥남으로 철수하는데 성공한다. 20일 가까운 전투에서 미군 사상자는 7,000여명에 불과했으나 중공군은 6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흥남으로 철수한 미군은 193척의 배를 동원해 10만 명의 미군과 한국군, 그리고 10만 명의 피난민을 배로 실어 나른다. 이는 지금까지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철수작전으로 기록돼 있다. 피난민이 한없이 몰려들자 매러디스 빅토리 호는 배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1만4,000명의 난민을 태워 날랐는데 이는 한 배에 가장 많이 사람을 태운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실려 있다.
이중 난민의 하나로 배를 타고 부산으로 온 사람이 문재인의 아버지다. 그는 그 후 거제도 수용소에서 노무자로 일하며 그곳에서 문재인을 낳았다. 스미스 소장의 치밀한 준비와 지도력이 없었더라면 1사단은 전멸했을 가능성이 크며 그랬더라면 흥남 철수도 없었고 흥남 철수가 없었더라면 문재인은 흥남에서 태어나 지금 새파란 김정은을 수령으로 모시고 살고 있을지 모른다.
지난주 안철수의 퇴장으로 문재인은 사실상 야권의 유일 후보가 됐다. 단일화에 성공은 했으나 그의 앞길이 그리 녹록해 보이지는 않는다. 일부 야권에서는 이를 ‘아름답고 감동적인 단일화’로 포장하고 싶어 하지만 지극히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를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나 감동을 느낄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안철수 지지자들의 절반만 그를 지지하고 나머지는 박근혜로 돌아섰거나 판단을 유보했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보다 더 큰 그의 문제는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이 애매모호하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자신이 청와대에 있을 때 노무현과 같이 추진한 한미 FTA 폐기를 들고 나왔을 때도 그는 애매한 입장을 보였고 역시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한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문제에 대해서도 계속 지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딱 떨어지게 얘기하지 않는다.
그는 노무현이 “북방 한계선은 영토선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논란이 되자 “그렇게 말했다면 대신 사과하겠다”고 말했는데 했으면 했고 안 했으면 안 했지 노무현과 30년 지기이자 청와대에서 매일 얼굴을 맞댄 그가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리고는 자신이 “노무현의 비서실장을 한 것이 인생의 최대 실수”라고 했는데 그 때 정치적으로 노무현과 인연을 끊었어야 했다는 뜻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 또 23일 연평도 포격 2주년을 맞아서도 박근혜가 희생자 추모 분향소를 찾아 묵념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대변인 성명만 발표하고 본인은 침묵을 지켰다.
2002년 높은 기대 속에 출범한 노무현 호는 5년 후 노사모가 한국에서 최대의 욕이 될 정도로 좌초하고 친노 진영마저 스스로를 ‘폐족’으로 부를 정도로 몰락했다. 그 비서를 지낸 문재인이 어떻게 자신을 노무현과 차별화하고 더 나은 정치를 펼칠지 의문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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