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 온다.’ 울던 아이가 울음을 멈출까, 배가 고파 우는 아이에게 줄 것 없는 홀아비는 달래다가 지치면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이걸로 겁준다. 이것도 자주 하게 되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아이도 두리번대다가 울음을 멈춘다. 아무 유래도 뜻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애비 온다.’와 함께 우리는 그렇게 자라났다. 별뜻이 없는 이 말이 구색 좋아하는 어른들에 의해서 ‘호랑이’나, ‘일본순사’로 바꿔 불려진다. ‘저기 순사 온다.’ ‘세상 무서움’을 심어주어 일찍부터‘ 기’를 꺾고, ‘쫄게’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주변 두리번대는 오래된 버릇은 어느덧 습관화 되어 버렸고, 사회 구석구석에까지 완전하게 파고들었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 어느 선생님이 이런 속담을 아직까지도 가르치겠는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이런 말 굳이 안하더라도 알아서들 잘한다.
일제 강점기는 다시 3등분하여 통치하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 1기가 바로 ‘무단통치기’, 이른바 ‘헌병 경찰 통치기’로 부른다. 3,1운동이후로 일본순사의 수적 열세를 만회 할 방법이 마땅치 않자 ‘문화 통치기’로 통치행태를 바뀌긴 하지만 그전까지는 오직 헌병들로 조선을 통치했다. 무단통치기에 일본순사들은 나중에 국가보안법의 근거가 되는 ‘치안보호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를 박탈했고, 일반 행정은 물론 입법, 사법 및 군대 통솔권까지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을 조선인들에게 휘둘렀다.
1910년 을사늑약 당시 대한제국의 인구는 1,742만명 정도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일본순사와 헌병보조원의 숫자가 2만 명이었다. 순수 일본인은 그중에 5천명 남짓이다. 이걸 전국의 군단위로 나누면 1개 군에 15명, 1개 면당 1명의 순수 일본경찰이 배치된 셈이다. 인구 3~4천여명당 ‘일본순사’가 1명이었다. 이 한명의 일본경찰이 약 2~3명의 조선인 헌병보조원을 거느리고 각급 읍면의 모든 인력과 재산을 강탈했던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였을까, 만약 옆에 있는 미국사람들에게 물어 본다면 무슨 애기 하느냐고 할 것이지만, 한국 분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가능하다.’고 끄덕일 것이 틀림없다. 갈라진 북쪽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랜 독재에 익숙해져 있는 국민들의 절반은 필자가 이런 글 쓴다는 자체를 아직도 이게 도대체 불손하기 짝이 없고, 무슨 목숨 내놓고 독립 운동하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최초로 대통령 선거라는 것을 인지한 것은 5.16 쿠데타 이후 치러진 제 5대(63년) 대통령선거였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당시에 선거판에서 들은 일화중의 한 가지는 ‘어느 누군가 투표소 위에 올라가서 투표하는 걸 내려 다 본다.’ 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커서 친구들과 얘기해보니 그런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나돌았던 소문이었다. 소문의 진위를 떠나서 독재자들은 인간의 가장 소중한 양심의 표현장소이자 신성한 투표소 안까지 통제하겠다는 발상으로 이런 괴담을 퍼뜨렸던 것이다. 투표소 안에 들어가서 천정을 살펴야 하는, 찍어 놓고 나와서도 가슴 졸이게 하는 그 고단한 세월을 이겨 왔으나 이제는 그런 게 없다고, 그건 이제 옛날이야기라고 웃으면서 말 할 수 있을까,
트라우마(trauma)의 사전적 의미는 ‘외상에 의한 스트레스성 장애‘이다. 의학용어이다. 전쟁이나 지진, 폭력등의 후유 증세이고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내 밥 먹는데 지장 없으면 될 일‘들 가지고, 그리고 내 밥이 특별히 나아질 것도 없는 일에 괜히 나서서 누군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일본 순사 트라우마’ 라고 볼 수 있다. 한국사람들에게만 있는 독특한 것이고, 일본 순사에 빌붙었거나, 독재정권을 후원하고 응원하고 그들에게 투표했던 사람들에게는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러니 칼 찬 일본 순사 놈 마냥 떠들고 다녀도 아무렇지도 않는 언론과 극소수의 사람들, 그들과 달리 조용함에 익숙해 있는 말없는 국민이 치루는 이번 선거가 또다시 궁금하고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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