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와인은 1787년산 샤토 라피트 로쉴드다. 1985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말콤 포브스에게 15만6,000달러에 팔린 이 와인은 200년도 더 지났기 때문에 마실 수는 없지만 와인애호가였던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의 이니셜(Th J)이 병에 새겨져있어 소장 가치로는 세계 최고로 알려져 왔다.
이 와인은 후에 억만장자 와인콜렉터인 윌리엄 카치에게 팔렸는데 놀라운 것은 2010년 카치가 이 와인이 ‘가짜’라고 주장하며 관련된 판매상들과 크리스티 경매소를 법정에 제소한 것이다. 이 사건은 와인업계에 엄청난 화제와 파문을 몰고왔으며 전세계가 큰 관심을 갖고 지켜봐왔다.
그런데 지난달 뉴욕 연방법원은 이 소송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소송을 낸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와인의 진위에 대한 의혹이 처음 제기된게 2000년이고, 정확한 출처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 2005년인데 소송은 한참이나 지난 2010년에 제기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6년간 이 와인의 조사와 송사에 수백만달러를 쓴 카치는 다시 항소할 것이라고 한다.
이 흥미진진한 세계최대의 가짜와인 소동은 벤자민 월리스의 소설 ‘억만장자의 식초’(The Billionaire’s Vinegar, 2009)에 잘 묘사돼있으며 배우 윌 스미스가 소설의 판권을 사들였고 곧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한편 카치가 제소한 소송 당사자 중에 와인 위조전문가 루디 쿠르니아완(Rudy Kurniawan)이 있다.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LA에서 살고 있는 그는 지난 3월 사기혐의로 미연방수사국에 체포됐는데, 그동안 억만장자 와인수집가 행세를 하며 고급와인 행사장에 드나들면서 고객을 물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런던 와인경매 행사에서도 로마네 콩티 몇십 병을 위조 출품한 강력한 용의자로 쿠르니아완이 지목됐었다.
지난 봄 FBI가 그의 집을 수색해보니 가짜와인 제조실이 설치돼있고 고급와인들의 모조 레이블 수천개, 중고 코르크 수백개와 코르크 삽입기계, 포일캡슐 무더기 등이 쌓여있더라는 것이다. 그동안 옥션에서 희귀와인을 구매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가짜와인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고급 와인의 가격이 워낙 비싼데다가 구입할 때 물건을 열어서 확인할 수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아니 열어서 확인한다 해도 와인의 맛이라는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 보관상태에 따라 계속 변하거나 변질되는 수도 있기 때문에 누구도 이게 진짜냐 가짜냐를 논하기 어렵다는 약점도 있다.
가장 구하기 힘든 것으로 유명한 1945년산 무통 로쉴드는 하도 가짜가 들끓어서 당시 생산량보다 훨씬 많은 와인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때문에 몇몇 유명 샤토들은 레이블에 홀로그램이나 전자칩을 넣어 진품을 표시하고 있고, 판매상들과 경매소에서도 진위 판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나 가짜와인을 근절시키기란 역부족이다.
요즘은 중국에서 가짜 수입와인이 사회문제로 떠올라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국은 지난 몇 년새 신흥부자들이 신분과시용으로 비싼 와인을 사들이면서 세계 와인시장에서 최대강국으로 올라섰는데 그 부작용으로 가짜와인이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다.
특히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라피트 로쉴드의 경우 샤토 총생산량이 24만병이고 중국내 유통양은 5만병 정도인데 실제 마켓에서 팔리는 200만병이나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보르도 특급와인 샤토 라투르는 올해 중국에서 가짜와인 생산자들을 단속, 몇 컨테이너 분량의 가짜 라투르를 없앴다고 한다.
가짜는 와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명품이 있는 모든 곳, 즉 큰돈이 오
가는 모든 곳에는 모조품이 판을 친다. 그림, 가방, 시계, 패션, 구두, 심지어 송로버섯과 캐비어에도 짝퉁이 유통되고 있다. 이런 것들은 물건의 본질을 벗어나 ‘돈’이기 때문이다. 그림이 그림이 아니라 돈이고, 와인이 와인이 아니라 돈이다. 돈이 있는 곳에는 탐욕이 있고, 탐욕은 사기와 범죄를 부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되 이런 가짜거래에 속아서 큰돈을 잃을 일이 전혀 없는 나는 이 추운 연말연시를 싸고 맛있는 와인들이나 홀짝이면서 보낼 생각이다.
<정숙희 특짐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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