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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universal theology is impossible.
But a universal experience is
not only possible but necessary.
보편 신학이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보편적 체험은
가능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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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진리"를 알고 자유로워지기 위함입니다. 그저
흔히 말하는 그런 진리가 아닌, 오직 단 하나의
"그 진리 [the Truth]"를 알고 무명(無明)과
원죄(原罪)의 질곡으로부터 해방되는 겁니다.
오직 진리의 깨달음만이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And ye sha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John 8: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복음서 8장 32절에 나오는 해방 선언입니다.
"그러면 [And]"으로 시작되는 이 "대자유로 가는
진리"는 과연 어떻게 얻어지는 걸까요? 그 답은
바로 이 말씀 바로 앞 31절에 들어 있습니다.
If you abide in my word,
you are truly my disciples. [John 8:31]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머무르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고, "그러면" 우리는 진리를 깨닫게 되고
"그러면"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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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universal theology is impossible.
But a universal experience is
not only possible but necessary.
보편 신학이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보편적 체험은
가능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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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말하는 "무명(無明)," 즉 "빛 없음"은
진리의 부재를 의미합니다. 늘 여여롭게 실존하는
진리를 잊고 있는 까만 환각상태를 무명이라 하지요.
하지만, 어둠이 따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란 건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새 시대 [New Age]"가’
도래한지 오랩니다. 천년 묵은 캄캄한 동굴 속도
촛불 하나 턱 밝히면 어둠은 삽시간에 사라집니다.
칠흙같이 캄캄한 방도 전기 스위치만 탁 켜면
어둠은 이내 사라집니다. 어둠이란 다만 빛의
부재(不在)일 뿐이니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도 따로 있는 게 아니죠.
다만 진리를 가리고 있는 무명이란 커튼을 훌렁
걷어내기만 하면 찬란한 빛의 "그 진리"가 저절로
드러납니다. 따로 알고 모르고 하는 게 아닙니다.
늘 알고 있었는데 다만 잊고 짐짓 모른 척해 왔던
그 실상과 “다시 처음” 조우하는 게 바로 깨달음이죠.
그러니, 사실 깨달음이란 가짜입니다. 꿈에서 깨면
꿈이 가짜인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꿈이 아주
가짜는 아니었죠. 꿈은 꿈으로서 진짜고 깨어있음은
또 깨어있음으로 진짜입니다. 그러니, 결국 진위의
판명이 불가능한 "그 진리 [the Truth]"는 말을
넘는 직관적 체험의 경계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소식 했다고 떠드는 사람들 대부분 "헛소식"
들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신비체험으로 성령을
접수했노라는 많은 사람들 또한 얼마 안가 시험에
든다는 명목으로 그 얕은 한계를 드러냅니다. 진짜
"그분의 말씀 속에 머물어 그 진리를 깨달아 참된
자유를 얻은" 경지는 참으로 비밀스럽고 개인적인
체험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오직 모른다고 얘기할 뿐입니다. 안다고, 알았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대개 사기꾼이거나 또는
무지한 불한당(不汗黨, 땀 흘리지 않는 무리)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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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universal theology is impossible.
But a universal experience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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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 신학이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보편적 체험은
가능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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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짙은 파란색으로 상징되는 "기적수업"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A Course in Miracles, 기적을
다루는 수업, 기적을 강의하고 배우는 과목이란 뜻의
A Course in Miracles. 물병자리 시대 인류에게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언(眞言)이라 일컬어지기도
하는 "크리스천 베단타 기적수업"은 이렇게 "보편적
체험’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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