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은 예상대로 오바마의 승리로 끝났다. 8%대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오바마가 이긴 것은 그가 잘 해서라기보다 상대방이 무능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로 중산층을 포함,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때 타기업을 인수 합병한 후 분할 매각해 떼돈을 버는 소위 ‘대머리 독수리 펀드’(vulture fund) 운영자를 공화당이 대선 후보로 택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당연히 그는 일반 서민들 사정을 모르는 ‘1% 특수층’으로 공격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했다.
거기다 공화당은 낙태에 관해 극단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인물들을 연방 상원의원 후보로 내보내 상원 다수당 탈환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 것은 물론 여성 표를 크게 까먹었다. ‘정당한 강간’과 ‘강간 임신도 신의 뜻’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당에 표를 주고 싶은 여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여성 유권자들은 55대 43으로, 미혼 여성은 2대1로 오바마에 몰표를 줬다.
그것도 모자라 공화당은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라틴계 유권자를 스스로 걷어찼다. 당내에서 온건파로 분류되고 있던 롬니조차 반이민 골수 공화당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주민들의 합법 체류 여부 확인을 위해 신분증 검사를 허용한 애리조나의 반이민 악법을 지지하는가 하면 불법 체류자들은 ‘자기 스스로를 추방하라’(self-deportation)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지난 4년간 새 유권자는 1,000만 명이 늘어났는데 그중 250만이 라티노다. 이들의 71%가 오바마에게 표를 던졌다. 4년 전 매케인이 받았던 것보다 4% 포인트가 높아진 것이다. 지금까지 공화당이 보여 온 반이민 성향을 감안하면 롬니를 지지한 라티노가 아직 27%나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공화당의 반이민 정책으로 과거 반반이던 아시안들도 민주당으로 급선회했다. 이번 선거에서 아시안의 73%가 오바마를 지지했는데 이는 라티노보다 높은 비율일 뿐 아니라 4년 전 보다 무려 11% 포인트가 증가한 것이다. 라티노와 아시안은 미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유권자 그룹이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라티노 비율은 올해 10%로 4년 전에 비해 1% 포인트 늘었고 앞으로 4년 뒤 다시 1% 포인트 증가할 전망이다.
롬니는 이번 선거에서 백인 유권자에 관한한 59%대 39%로 오바마를 압도했다. 그러나 올해 백인 유권자 비율은 4년 전에 비해 2% 포인트 줄어든 전체 유권자의 72%를 기록했고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것이 확실시된다. 빠르게 늘어나는 유권자 그룹에 외면당하고 계속 주는 유권자 그룹에 매달려야 하는 정당의 미래가 어떨 것인지는 불을 보듯 분명하다.
가장 무능한 대통령의 하나로 분류되는 아들 부시도 한가지만은 알았다. 라티노를 무시하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서툰 스패니시로 연설도 할 줄 알았던 그는 라티노 40%의 지지를 얻었고 그 결과 두 번이나 대통령을 해먹었다.
문제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정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은 민주당이 미국 장래의 최대 위협인 재정 적자와 사회보장 제도 개혁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바마 취임 전 12조달러이던 미국의 국채는 이미 4조달러가 불어났고 앞으로 4년간 다시 4조달러가 늘어날 전망이다. 12년 뒤면 메디케어 펀드는 고갈되고 이로 인한 적자는 급속도로 증가하게 된다. 그럼에도 오바마와 민주당은 이번 선거 기간 내내 이에 대한 해법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오바마가 당면한 과제는 소위 ‘재정 절벽’으로 불리는 내년 1월 자동 시행되는 대대적인 증세와 예산 삭감을 막는 일이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이를 해결하더라도 메디케어와 소셜 시큐리티를 새로운 토대에 올려놓지 못하면 조만간 재정 절벽은 다시 찾아온다.
현 제도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60대고 은퇴자 하나에 근로자가 20명이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보통 80이 넘게 살고 근로자 셋이 은퇴자 하나를 부양해야 하는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 집권당은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고 이를 해결하려는 척이라도 하는 야당은 집권할 능력이 없다는데 미국의 비극이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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