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무언의 약속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전해져 왔다. 권력이양은 공산당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거기에는 이런 전제가 깔려 있었다. 다스리는 주체는 ‘우리, 다시 말해 공산당이어야 하고, 인민은 복종해야 한다’는.
모택동 이후의 그 불문율에 등소평이 수정을 가했다. ‘우리가 다스리고 인민이 복종해야 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하나 첨부된 사항은 복종할 때 번영을, 부(富)를 안겨준다는 것이다.
그 약속과 함께 공산당 집권은 제3세대, 제4세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제5세대를 거쳐 10년 후에는 제6세대, 20년 후에는 제7세대, 30년 후에는… 하는 식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역사의 진로라는 게 그러나 그렇게 일직선으로 이어질까. 스스로를 시황제(始皇帝), 즉 1세 황제로 불렀다. 그리고 2세, 3세, 4세…, 100세, 자손만대까지 그 왕조가 이어져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진시황제의 ‘야무졌던 꿈’과 어딘가 방불해 하는 말이다.
‘구체제와 대혁명’- 프랑스 대혁명 직전의 사회적 여건을 진단한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저서다. 그 책이 중국권력의 이너 서클 일부에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다름 아닌 차기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내정된 일부의 사람들이다.
중국의 최고 권력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왜 그 고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을까. 답은 자명해 보인다. 본능적으로 뭔가 프랑스 대혁명 같은 위기가 임박했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잠깐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미국과 나란히 G2로 불린다. 불과 수년 후면 미국의 GDP(국내총생산)를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불안의 징후들은 그러나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자본의 해외유출은 최고기록을 잇달아 갱신하고 있다. 백만장자들은 저마다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 민주화의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시진핑은 중국 리버럴의 상징적 존재였던 후야오방의 아들을 만났다는 소문도 전해지고 있다.
독재체제, 권위주의 형 체제는 근본적으로 공포(fear)를 그 기반으로 하는 통치체제다. 관련해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이 만든 신조어가 ‘하마 룰’이다.
시리아의 수니파 무슬림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하페즈 알아사드 당시 대통령은 반군 진압을 명분으로 하마 시를 무차별 포격하고, 수 만 명의 주민을 학살했다. 사람들의 뇌리에 공포를 각인시킴으로써 반역 자체를 꿈꿀 수 없게 만든 것이다.
하마 룰은 이후 아랍 세계의 지배적인 통치 방식이었다. 이른바 ‘공포에 의한 통치’다. 중국 공산당의 통치방식도 근본에 있어 다를 게 없다. 그 ‘공포에 의한 통치’방식이 그런데 먹혀들지 않게 됐다. 공산당 지배층과 피지배층 인민 간의 힘의 균형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지난 수 십 년 간 인민은 공산당 정부를 두려워하고 복종해 왔었다. 최근 들어 상황은 역전됐다. 공산당 정권이 인민을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독일 스피겔지의 분석으로, 연 18만 건(비공식 통계로는 30만 건)이 넘는 각종 반정부, 반부패 소요사태에 주목했다.
“공산당은 한때 도덕적 권위도 독점했다. 그 도덕적 권위독점상황이 무너지면서 공산당의 정치권력 독점도 위기를 맞고 있다.” 클레어몬트 맥킨나대학의 민신 페이의 지적이다.
후진타오-원자바오 통치 10년 동안 중국경제는 4배 이상 커졌다. 그와 반비례해 사회적 모순도 극대화됐다. 경제발전의 수혜 층은 공산당원과 그 주변으로 국한됐다. 10억이 넘는 인민 대중의 사정은 상대적으로 더 악화된 것이다. 그리고 공산당원 중심의 국가자본주의는 자원 왜곡과 구조적 부패의 원인이 되고 있다.
상위 1%가 41%의 부를 독점하고 있다. 지니계수(소득 불균형을 나타내는 지수)가 위험경계선을 돌파한지 이미 오래다. 원자바오, 시진핑, 또 스캔들로 축출된 보시라이 등 공산당 최고위층들의 숨겨진 재산은 알려진 것만 최소 수 억 달러에서 수십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사실들이 바로 그 증좌들로, 경제발전과 반비례해 공산당 정권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사회갈등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18차 전국대표대회 개막과 함께 전 세계의 이목은 시진핑으로 대표되는 제5세대 지도층에 쏠리고 있다. 직면한 대내적 도전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다. 그러나 벌써부터 그 전망은 비관적이다.
투명성확보로 압축되는 경제개혁은 대수술에 가까운 정치적 개혁을 전제로 이루어 질 수 있다. 1당 독재의 닫힌 체제에서 그런 개혁이 성공한 전례가 없다. 시진핑 체제는 더구나 부패한 중국 공산당의 파워 게임의 소산이다. 태생적으로, 또 제도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 결과는 그러면.
“중국은 머지않아 경착륙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2기를 맞은 오바마 행정부는 ‘공산당 통치 중국을 더 이상 국제정치의 상수(常數)’로 보아서는 안 된다. 공산당 체제 붕괴와 뒤이은 중국의 민주화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대선 이후를 맞아 워싱턴 일각에서 나오는 소리다.
“반부패와 정치체제 개혁은 인민이 주시하는 주요 정치이슈다. 이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 당도 국가도 망할 수 있다(亡黨亡國).” 후진타오의 고별사다. 그 말이 어쩐지 예언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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