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의 미 선거 참여가 두드러지게 늘어나고 있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나만 묵묵히 열심히 성실하게 살다보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에는 미국 정치는 나와는 먼 얘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1992년 4.29사태를 겪으면서 아메리칸 드림이 나만 죽어라 노력해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1994년 캘리포니아에서 서류미비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주민발의안 187과 1996년 영주권자의 웰페어 수혜를 금지한 웰페어법 개정 이후 이민자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커뮤니티의 정치력 신장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오랫동안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는 수적으로도 정치적 소수였고, 그나마 투표율이 꼴찌에 가까운 그야말로 정치적으로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커뮤니티였던 것이 사실이다.
올해 선거에서는 그 위상이 달라졌다. 백인 유권자의 비중은 줄어들고 유색인종 유권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주류언론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선거 분석이다. 유색인종 중에서도 아시안 아메리칸 커뮤니티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유권자 그룹이며 심지어는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커뮤니티로 성장했고, 그 한 축에는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가 있다. 지난 십수년 간 목이 터져라 유권자 등록, 선거 참여를 외치고 선거 교육, 투표 보조를 위해 매 선거마다 발로 뛴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민족학교가 선거 당일 로스엔젤레스 시 코리아 타운 내 8개 투표소와 11월 1일 까지 우편 투표로 접수 시킨 한인 유권자의 투표 참여도를 조사 한 결과 이들 8개 투표소에서 한인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27.6%지만 실제 투표한 전체 유권자 중에서는 29.2%가 한인이었고 유권자 비율보다 투표자 비율이 높은 인종은 한인과 백인 밖에 없다. 2010년 11월 총선거와 비교해서도 카운티 전체 투표율은 하락했지만 한인 투표율은 최소 6% 이상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11월 1일 발표된 필드여론조사 설문 조사 결과 한인 유권자의 59%가 주민발의안 30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 캘리포니아 소수민족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투표를 하는 이유는 개인마다 다양할 것이다. 정부 혜택을 지키기 위해서, 교육을 지키기 위해서,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 내 가족과 친구를 위해서 등등.
여러 면에서 이번 11월 선거는 자축할 만 하다. 투표 참여도 높았고, 발의안 30을 통과시켜 교육예산 삭감을 막아냈고, 이민자의 높은 선거 참여율을 증명해 인도적 이민개혁의 추진을 촉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슈 중심으로 투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박수를 받을 일이다.
하지만, 투표 참여가 끝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선거 이후이다. 내가 뽑은 공직자가 내가 원하는 정책을 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누군가는 오바마 당선과 민주당의 상원 다수 장악으로 드림법안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이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더 나아가 조심스레 포괄적인 이민개혁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경제회복을, 일자리 창출을, 교육환경 향상을, 더 나은 복지혜택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선거 결과가 이런 기대를 현실로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이민자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던 클린턴 대통령은 이민자를 차별화하는 웰페어 개정법에 서명했고, 이민개혁 지지로 표를 받았던 정치인들이 다수를 장악하던 연방의회에서도 이민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정책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자가 당선된 것은 유권자들에게는 본선 진출을 위한 예선 통과에 불과하다. 본선에서는 더욱더 치열해져야 한다. 우리 커뮤니티의 오랜 숙원인 드림법안과 이민개혁, 그리고 경제 활성화와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고삐를 늦추지 말고 본선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선거 참여는 했으니 이제는 정책 참여를 할 때다. 선출된 공직자가 올바르게 일하도록 감독하고 올바른 정책이 입안되도록 하는 것은 여전히 유권자의 몫이다.
<윤희주 민족학교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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