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6일, 공화후보 미트 롬니의 한 지지자는 경악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 “왜? 도대체 왜, 누가 그를 또 뽑는단 말인가?” 그 이유를 롬니의 당선을 확신하며 마련된 1인당 1,000달러짜리 축하파티에 참석한 그는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보스턴 컨벤션센터 볼룸에서 열린 선거일 밤 롬니 캠페인본부 행사는 “1%에게 어울리는 빅토리 파티였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1만명이 운집한 시카고의 오바마 파티와는 대조적으로 수백명만 초대된 롬니 행사장에선 대부분 정장차림의 백인들이 블랙타이 웨이터의 서브를 받고 있었다 “후보와 부유한 지지자들을 대중의 무리로부터 떼어놓은 장소”였다.
오바마 승리가 확정된 순간, 다양한 얼굴이 함께 환호하며 함께 열광한 시카고와 도서관 같은 정적에 휩싸인 보스턴의 명암은 이번 선거에 투영된 미국민의 정서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캠페인 내내 그랬듯이 선거직후 출구조사에서 집계된 최우선 이슈도 ‘경제’였다. 그러나 막연한 경제가 아니었다. 누가 나와 내 가족을 더 잘 살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표를 갈랐다. 5명 중 1명이 “나를 위해 관심을 가져 줄 후보”가 선택의 기준이었다고 답했다. 각 후보의 정책은 누구에게 가장 혜택을 준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롬니의 경우엔 ‘부유층’이라는 답변이 54%에 달했다. 오바마의 경우는 중산층 44%, 저소득층 31%였다.
오바마에게 승리를 안겨준 롬니 패배의 요인은 여러 가지로 거론된다.
주요 이슈에 대한 잦은 말 바꾸기는 투표 당일까지 “진짜 롬니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주지 못한 채 불신을 남겨놓았고, 히스패닉·동양계 등 이민급증에 의한 인구변화와 낙태·동등임금 등 여성문제에 대한 외면은 롬니를 넘어 공화당 전체의 문제로 부각되었으며 위기 발생 때마다 한 발 늦는 대응으로 헤맸던 롬니 캠페인팀의 미숙함도 지적되었다.
이런 요인들 못지않게 적중한 전략 중 하나는 양쪽 진영 모두 꺼리는 용어이지만…‘계급전쟁’이다. 2012년 재선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팀오바마가 꼽은 대롬니작전의 주제는 두 가지였다고 한다 : 하나는 말 바꾸기, 다른 하나는 중산층보다 특권층을 보호하려는 부유한 기업가. 롬니진영이 CEO경력을 내세운 ‘경제 해결사’만 줄곧 강조하는 동안 롬니의 이미지는 팀오바마에 의해 “서민과는 공감대가 없는 비정한 억만장자”로 채색되었고 국민의 절반을 사회적 기생충으로 비하한 롬니의 ‘47%’ 동영상이 폭로되면서 ‘사실’로 굳어졌다.
팀오바마의 작전은 성공했다. 선거의 프레임을 ‘심판’에서 ‘선택’으로 바꾼 것이다. 어려운 경제 속에서 빠른 경기회복에 실패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심판 대신 유권자들에게 ‘중산층을 위해 싸우는 오바마’와 ‘부유층을 대변하는 롬니’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판을 이끌었다.
4년 전 최초의 흑인대통령을 탄생시켰던 ‘오바마 연합’은 구성원이 조금은 달라졌지만 이번에도 건재했다. 소수인종과 젊은 층에 더해 자동차산업 구제정책으로 생업을 건진 백인 노동자들, 공화당에 모욕당한 여성의 기본권을 지키려는 독신여성들이 가세했다.
사회적 약자인 이들의 지원을 동력 삼아 재선된 오바마는 이들의 기대를 등에 지고 집권2기를 시작하게 된다. 막바지엔 언더독처럼 뛰어야했던 선거전은 정말 힘든 싸움이었다. 치열한 싸움 끝에 얻은 승리의 대가는 인종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깊게 분열된 나라다. 그러나 분열의 상처를 치유할 유예기간도, 승리를 자축할 여유도 지금 그에겐 없다. 오늘부터 팔을 걷어 부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 내년 1월1일부터 닥칠 ‘재정절벽’부터 막아야 한다. 적자 감축을 위해 증세와 대규모 정부지출을 동시에 시행하는 긴축조치다. 부시감세안과 급여세 감세가 금년 말부터 폐지되면서 세금이 인상되고 지난해 재정적자 감축협상 실패로 새해첫날부터 1조2,000억 달러의 정부지출을 삭감하는 재정절벽이 현실화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경기는 다시 침체로 빠지면서 미국 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이 사태를 막으려면 의회와의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 지출삭감과 세금인상을 둘러싼 민주당 백악관과 공화당 의회의 팽팽한 대결이 재연되는 것이다. 재정절벽으로 시작해 부채상한선 증액, 이민개혁, 기후변화 등 줄줄이 다가올 집권 2기 주요 어젠다의 해결 여부는 의회와의 성공적 협력에 달려있다.
‘오바마 낙선’을 공개 목표로 삼았던 공화당이 이번선거의 결과를 진지하게 분석하며 자성의 계기로 삼는다면 ‘초당적 타협’의 가능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재선 성공으로 ‘위대한 유산’을 남긴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기회를 얻게 된 오바마도 보다 진지하게 공화당의 의견을 경청할 것이다. 양측의 입장과 필요가 만나는 한 지점에서 ‘초당적 타협’은 어느 날 기적처럼 이루어 질 지도 모른다.
민주당 컨설턴트 마이클 섕크는 오바마 승리의 의미와 앞으로 4년의 기대를 이렇게 정리했다. “마침내 포괄적 이민개혁이 실현될 것을 의미하며, 마침내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소셜시큐리티가 구제되는 것을 의미하며, 마침내 오바마케어가 전면 시행되고 금융규제법이 유지되며, 반이민·반여성·반동성애자 대통령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1% 못지않게 99%도 대변되고, 47%도 53% 못지않게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에 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오바마는 지난 주말 오하이오 유세에서 외친 자신의 말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워싱턴 평화의 대가가 가난한 학생들에게서 학비지원을 빼앗고, 가족계획 기금을 폐지하거나…빈민층과 노인, 장애자의 의료보험을 없애는 것이라면 나는 그 대가를 치르지 않겠다. 그것은 내가 하려는 타협이 아니다. 그것은 초당적 협력이 아니라 굴복이다”
그것은 이해계산에 사로잡힌 정치가들이 자주 잊어버리는 사회정의의 문제다. 이번에도 유권자들은 정치가, 정부가 왜 존재하는가를 표로 상기시켜 주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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