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박물관 주최·본보 후원 ‘송진호 유작전’
“예술가는 자기 시대를 대변하지 않는다. 아티스트란 탐험하고 발견하고 되어가는… 영원하고 신성한 인간의 본성을 대변하는 것이다. 예술은 로맨스에 관한 것이 아니고 고통과 아픔에 관한 것도 아니다. 감정에 대한 것이나, 심지어 목적에 관한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선 것, 자아마저 넘어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넘어서, 자아마저 넘어선 예술’을 남긴 화가 송진호(1964-2011·사진)의 유작전이 11월8일부터 내년 1월5일까지 LA 다운타운의 표갤러리에서 열린다.
시간과 존재의 초월 추구
고독과 신비에 싸인 작가
‘천상의 공간’ 독특한 30여점
8일부터 표갤러리서 소개
한미박물관(Korean American Museum)이 주최하고 본보가 후원하는 이 전시회는 고독과 신비의 작가 송진호의 1주기를 맞아 여는 추모전이자 LA 한인사회에서의 첫 개인전이다.
송진호는 한인타운 청소년회관(KYCC) 송정호 관장의 동생으로, 지난해 7월 급성천식으로 47세에 유명을 달리했다. 지극히 프라이빗한 성격과 삶, 오로지 예술에의 열정에 빠져 살았던 천재화가 송진호는 살아 있을 때도 신비했고, 죽어서는 신화로 남게 됐다.
그의 삶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버클리 미술대학원 시절의 동료들과 그를 가르친 교수들은 모두 송진호가 특별한 재능과 독창적인 시각을 가진, 기법에서도 완벽했던 작가라고 입을 모은다.
쉼 없는 영혼의 갈등과 날 것의 감정을 가진 그는 예술을 통해 존재의 초월을 추구했던 타고난 예술가였으나, 안타깝게도 기성 화단을 혐오했던 탓에 이 상업화 시대에 작가로서 빛을 볼 수는 없었다. 아니 그는 ‘빛을 보기’를 결단코 원치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가 쓴 글 중에 “명예나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진실이 결여된 자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표현도 남아 있으니 말이다.
송정호 관장은 동생에 대해 “괴팍하고 내성적이었으나 예술에 대해서는 치열했다”고 말하고 “이 전시회를 여는 것은 어쩌면 진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고백했다.
“동생은 그림 그리고, 그림에 대한 글 쓰는 것 외엔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천식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 같아요. 가끔 숨 쉬기가 힘들다고 했는데, 죽고 나서야 그게 천식이었다는 걸 알게 됐죠”
동생이 살던 아파트에 가보니 그림들과 글 쓴 것들, 옷가지 몇 개와 지갑 하나, 그 외엔 아무 것도 없더라고 했다. 은행 어카운트조차 없이 자신만의 예술세계에서 살았던 동생에 대해 형은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던 이기적인 놈이었다”며 안타깝고 아픈 마음을 토로했다.
‘천상의 공간’(A Celestial Space)이란 제목의 이번 유작전에는 버클리 대학원에서 MFA(미술석사)를 받은 1994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16년 동안 그린 작품 30여점이 소개된다.
송진호가 집중했던 주제는 시간의 흐름, 경계와 자아를 넘어선 초월적 영역으로, 인간을 미지의 광대한 세계 앞에 놓인 고독한 존재로 표현했다. 그의 그림 속 군데군데 들어 있는 작은 사람의 형체를 작가는 ‘유니버설 맨’이라고 불렀는데 사실상 그의 자화상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꿈속처럼 뿌연 배경의 반투명한 세계는 깊은 공간감을 느끼게 하며 90년대 초 북가주 미술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 마크 로스코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에게 받은 영향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창조한 독특한 화면을 보여준다.
오일에 타르를 섞어서 그린 송진호의 작품에는 당연히 소수민족 이민자의 시각이 담겨 있고, 한국적 감성과 동양적 구성이 녹아 있으며, 추상과 구상을 성공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치열한 자기 성찰을 드러낸, 개인적인 탐구가 시대정신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작업들을 남겼다.
아이린 홍 한미박물관 큐레이터는 “송진호는 여러 개의 시리즈를 시도했으나 초기 작품들은 찾을 수가 없고 지금까지 정리한 것만 160점 정도 된다”고 전하고 “추상이지만 구상적 요소를 가진, 공간성을 아주 잘 표현한 작품들”이라며 “특히 색감이 무척 아름다운데 단순한 색이 아니라 그 안에 여러 층과 레이어가 있는 깊이 있는 색감이 다차원적으로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내게 있어서 그림은 여행과 같다”고 말하곤 했다는 송진호. ‘천상의 공간’은 그가 다 소진하지 못한 예술에의 열정이 되살아나 여행하며 완성하는 전시회가 되기를 사람들은 바라고 있다.
오프닝 리셉션은 8일 오후 6~8시.
PYO Gallery LA, 1100 S. Hope St. #105 LA, CA 90015, (213)405-1488
문의 (213)215-4343(아이린 홍)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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