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그 가을날 우리들은 태릉 숲을 거닐고 있었지요./가을은 깊어 숲속엔 소복히 낙엽들이 쌓이고 그 위에서 우리들은 길고 긴 첫 입맞춤을 나누었지요./세월들이 낙엽처럼 겹겹히 쌓이고 시간은 무심히 흘러 갔지만,그때 그 가을날은 돌아올수 없고,나도 한때는 열아홉살의 바보처럼 순진한 소녀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수가 없지요./그때 그 깊은 가을날 지금도 가슴 깊숙히 감추어 놓고 가끔 몰래몰래 꺼내보고 있다는 것을 나 밖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지요/
그 옛날 지금은 아득히 멀어져 간날을 추억하며 이 가을 새삼 그때의 한 소녀가 되어 지나간 날을 생각해 본다. 누구나 사람들은 한때 첫사랑의 연연한 기억들을 가슴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가을이 오고 낙엽들이 한잎 두잎 떨어지면 무심하게 살아왔던 지난날을 추억하며 새삼 첫사랑의 기억들이 살아나 그리워 하게 된다. 그 가을 나는 열아홉살의 순진무구한 소녀였고,대학 일학년생이었다. 그 가을 나는 첫사랑에 빠졌다.
그 첫키스의 기억이 달콤했는지 어땠는지는 알수 없지만 지금도 그 깊은 가을날의 낙엽들의 촉감이며 가슴이 터질것 같았던 열정과 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내 몸의 세포들이 알알히 살아서 외치고 있는 충만감은 기억한다.
그날 그 태릉의 숲은 아늑하고 적막했으며 이 세상에 우리 단 둘이만이 살고 있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우리 둘이 사랑하고 있고 서로가 원하고 있다는 느낌뿐 다른것은 중요치 않았다. 어느새 하늘엔 별이 한두개 떠오르고 곧 총총한 별들만이 밤하늘을 채우고 우린 그곳에서 서로의 사랑을 밤하늘의 별을 두고 맹세했다.
그러나 사랑의 맹세만큼 허무한것도 없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알게된다. 삼년후, 결국 우리들은 남남이 되었고, 그후 수십년을 우리들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태연하게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이제는 그도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고 나도 손자손녀들을 거느린 할머니가 되었다.
나는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다. 더구나 과거에 남보다 추억이 많다는 것이 더 없이 소중하고 그것 때문에 현재의 삶이 더 풍족한것 같다. 지나간 추억도 소중한 물건처럼 가슴 한구석에 쌓아두고 현실이 각박할때 한개씩 꺼내볼수 있다면 그 삶은 풍족한 양식을 가진 사람차럼 부자일 것이다.
한때 나는 그가 이 세상에 없다면 한시도 살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그가 밤새 흰눈을 맞고 내가 살던 시골의 과수원을 찾아왔을때 그 가슴 터질듯이 기쁘던 날을 잊을수가 없다. 또 흰눈을 머리에 이고 그의 모습이 하얀 신작로 길로 한점의 모습으로 사라져 갈때의 그 안타까움도 어제처럼 기억한다.
그 춥던 겨울, 방학을 맞아 친구와 둘이서 그를 찾아 광주라는 낯선 도시를 기차를 타고 밤새 가던 날과 만약 그와 이별을 한다면 안나 카레니나처럼 그 기차에서 몸을 던져 죽을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했던 그 밤을 또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 밤, 나는 얼마나 안타깝고 슬펐던가!
몇년후, 나는 가난한 예술가의 아내가 되어 원고지를 끼고 이 골목 저 골목길을 헤메고 다니던 한 잡지사의 여기자로 종로의 한 복판에서 그와 딱 마주쳤던 날과 다방에서 차 한잔을 놓고 마주 앉았을때의 그 어색함과 왠지 알수 없는 억울함과 분노로, 또 이제는 이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다는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때의 허무감이 나를 지배하던 것을 또 기억한다.
사랑이란 언제나 허무하며 더구나 첫사랑만치 허무하고 믿을수 없는것 또한 없다. 사랑이 신비하다는 것은 언제나 변한다는 것이다. 헤어지고 나면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 역시 첫번것 처럼 소중하다. 이 세상에 소중하고 귀하지 않은 사랑이란 없다. 첫사랑이 잊쳐지지 않고 애틋한 것은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연연함에 있다.
그와 헤어진지 십수년만에 우리들은 광화문에서 다시 만났다.
한때는 그렇게 사랑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우리들은 완전히 타인이었으며 또 그렇게 변했다는 것이 마음이 편할만큼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들의 인생은 이제 영원히 서로 맞닿을수 없는 철로길 처럼 계속해서 평행선으로만 가야 하는 것이다.
그도 편하고 행복해 보였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들은 차를 한잔 나누어 마시고 다시 몰랐던 사람들 처럼 악수를 하고 안녕!하며 헤어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벌써 또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우리들은 안녕!하며 헤어졌지./사람들이 번잡히 오가는 광화문 네 거리에서./그렇다고 불행한것은 아니었지./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었지./이 가을에 지나간 옛사랑을 생각한다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낭만이지./슬픔이 아니라 행복이지./내가 한때는 예쁜 소녀였듯이 지금도 예쁜 마음으로 늙어가면 그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살이지./순리대로 흘러가는 행복이지./옛날 옛적 그 가을에 사랑하는 연인들이 있었지./지금도 이 가을날 그 숲속엔 사랑하는 연인들이 있겠지./세월이 가고 또 가도 자꾸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생겨나겠지./ 아아!이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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