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홀아비와 젊은 과부가 시골 기숙학교로 각각 자녀를 찾아갔다가 우연히 만나 매주말 먼 길을 함께 오가며 두번째 로맨스를 엮는 내용을 그린 멋진 프랑스 영화가 있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Un Homme Et Une Femme)’가 제목이다. 영화 못지않게 주제가(프란시스 레이 작곡)도 히트해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자주 듣는 클래식 팝송이 됐다.
오스카 최우수 외국영화 상(1966년)을 받은 이 영화가 요즘 머리를 어지럽힌다. 영화제목과 똑 같은 문구가 금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리는 탓이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창세 이래의 전통적 개념이자 미국의 합법적 결혼규범이 심판대에 오르는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 남자와 한 여자’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그 열기가 심드렁해진 곳도 있다. 뉴욕, 코네티컷, 아이오와, 뉴햄프셔, 버몬트 등 5개주와 워싱턴 DC에서는 ‘한 남자와 한 남자’ 또는 ‘한 여자와 한 여자’가 이미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다. 메릴랜드, 메인, 미네소타, 워싱턴 등 4개주는 내달 선거에서 동성결혼의 합법화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한다. 찬성률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선 2005년까지 ‘동성동본 결혼 금지법’이 수많은 청춘남녀를 울렸지만 미국에선 동성결혼법이 지난 수십 년간 국민여론을 분열시켜온 대표적 사회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현재 미국의 38개 주가 주 헌법을 개정하거나 주민발의안을 통해 동성결혼을 불법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32개 주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주민발의안이 상정됐지만 모조리 부결됐다.
하지만 올해 상황은 사뭇 다르다. 동성결혼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반대자들 쪽을 압도한다. ‘실탄’(캠페인 자금)면에서도 비교가 안 된다. 찬성그룹은 2,500만달러를 모은 반면 반대그룹은 그 절반도 안 되는 1,200만달러를 모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같은 하이텍 대기업들이 찬성 그룹의 돈줄이다. ‘테키’들 가운데 게이와 레즈비언이 많다는 증거다.
그러나 생각처럼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의 총칭)들이 많지는 않다. 이틀 전 UCLA가 발표한 조사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전체 성인 중 LGBT는 3.4%에 불과하다. 또한 일반적 통념과 달리 백인보다 유색인종 가운데 LGBT 비율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흑인이 4.6%, 히스패닉이 4%, 아시안이 4.3%인데 비해 백인은 3.2%에 불과했다.
동성결혼법은 1993년 하와이에서 태동했다. 동성커플 3쌍에 결혼증명서 발급을 거부한 주정부에 주 대법원이 위헌판결을 내렸다. 이에 겁을 먹은 연방의회가 1996년 서둘러 ‘결혼 수호법’(DOMA)을 제정하고 각종 혜택에서 동성커플을 제외시켰다. 그러나 하와이주 대법원의 판시 이후 매사추세츠 등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주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동성애자들이 큰 힘을 얻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중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동성결혼법을 공식 지지했기 때문이다. 원래 반대했지만 생각이 ‘진화’됐다고 했다. 그의 민주당 선배로 DOMA에 서명한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교회장로인 카터 전 대통령도 지지자였다. 그의 라이벌인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는 동성결혼을 극력 반대한다.
동성결혼법의 지지자들은 전통도, 관습도 아닌 사랑이 결혼의 기본요건이며 사랑하면 남자끼리도, 여자끼리도 결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생리적으로 성적인 취향이 다른 소수계일 뿐이라며 소수민족의 인권을 존중하듯 자신들의 인권도 존중해달라고 요구한다. 또, 성경의 어디에도 동성결혼을 금지한 대목이 없다고 지적한다.
반대자들은 동성결혼으로는 자녀생산이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동성결혼을 합법화할 경우 후세에 게이와 레즈비언이 계속 늘어날 뿐 아니라 일부다처제, 집단결혼, 수간 따위도 합법화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쪽 말이 다 그럴듯하지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아닌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끼리도 뜨거워 질 수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 역시 꺼림직 하다.
<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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