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가까이 걸렸나. 예선 전초전부터 따지면. 지루하기까지 했던 2012년 미국대선의 그 장기 레이스가 이제 막바지 질주 구간만 남겨 놓고 있다. 투표일까지 두 주 남짓한 현재 지지율에서는 롬니가 앞서고 있다. 선거인 확보 예상에서는 그러나 오바마가 여전히 우세로, 판세는 그야말로 예측불허의 대혼전이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대선에의 한 가지 불문율이다. 경제가 안 좋다. 그것도 공황(恐慌)급 불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된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 일반 통념이 그런데 지금까지는 안 통한 선거전이 올 대선이다.
경제는 계속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도전자인 롬니가 내내 오바마에게 끌려 다녔다. 지지율 경쟁에서 한 번도 앞서지 못했던 것. 그래서 한때 나온 예상은 오바마의 낙승이었다.
그 흐름이 뒤늦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지난 3일의 1차 TV토론이 그 계기다. 그 토론에서 예상 밖 승리를 거두면서 롬니는 맹추격에 나섰다.
지난 16일 2차 토론은 오바마의 판정승. 그럼에도 불구하고 롬니의 추격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막판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소게임을 벌이는 형국이다. 무엇이 그러면 이 같은 대혼전을 불러오고 있나.
“사상 처음으로 미국의 개신교 인구는 다수(majority)의 위상을 상실했다. 미국의 성인인구 중 개신교 신자는 전체의 48%에 불과하다.” 퓨 연구기관의 최근 발표다.
미국은 청교도 전통의 나라다. 44대에 이르는 역대 미국의 대통령은 케네디를 예외로 하고 모두가 개신교 신자다. 이 미국에서 개신교 인구가 사상 처음 50% 이하로 줄었고 그 같은 감소는 이미 예상되어온 결과라는 내용을 퓨 연구기관은 발표한 것이다.
‘개신교 인구 소수화 현상’은 이미 미국사회 여기저기에서 드러나고 있다. 미 사법부의 최종보루인 연방 대법원 대법관 9명 중 개신교 신자는 한 명도 없다. 2012년 보수 공화당 정?부통령 후보 중 개신교 신자는 하나도 없다. 롬니는 몰몬교도이고 러닝메이트인 폴 라이언은 가톨릭이다. 이런 면에서 이 역시 미대선 사상 하나의 기록이다.
왜 개신교의 나라 미국에서 개신교가 점차 소수로 전락하고 있나. 딱히 무신론자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쨌든 종교와는 무관하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5년 전 조사에서 그 같은 사람은 15%로 나타났다. 그 수치가 이번 조사에서는 20%로 늘어나면서 개신교 인구는 상대적으로 감소한 것이다.
이 흐름은 보이지 않게 정치적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종교와 무관하다는 사람들은 낙태와 동성 간 결혼을 지지하는 경향이다. 말하자면 민주당의 아젠다를 선호하는 편이다. 퓨 보고서는 백인 인구 중 이 같이 종교와 무관하다는 사람이 특히 급격히 늘고 있고 성별, 또 소득과 관계없이 그 증가세는 전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가 던지고 있는 함축의 메시지는 그러면 무엇일까. 2012년 대선의 겉으로 드러난 이슈는 경제다. 그러나 내면의 숨겨진 아젠다는 가치관 전쟁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결혼은 남과 여의 결합으로 나는 믿고 있다.” 2008년 대선전 때 새들백 교회 포럼에서 오바마가 한 발언이다. 4년 후 오바바의 그‘믿음’에 변화가 생긴다. 동성결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오바마뿐이 아니다. 클린턴을 비롯해 민주당의 지도급 인사들은 모두 동성 간의 결혼을 지지하고 나섰다. 동성결혼 허용은 사실상의 민주당 공약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리고 발표된 것이 민주당의 정강정책이다. 수 천 단어로 이루어진 정강정책에서 하나님(God)이란 단어는 한 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 사실을 한 기독교 방송기자가 보도했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CNN이 보도했다.
2004년 정강정책에는 일곱 번, 2008년에는 한 번 언급됐던 하나님(God)이란 단어가 올해에는 아예 빠져버린 것이다. 빠진 게 또 하나 있었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내용이다. 논란이 따르자 민주당은 뒤늦게 하나님(God)의 존재에 대한 언급을 한 차례 정강에 포함시키고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수도라는 내용을 넣었다.
‘대통령선거는 시대정신을 담는다’- 얼마만큼 시대정신에 충실한가에 따라 대권향방은 결정된다는 이야기다. 하나님(God)의 존재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다. 동성결혼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는 가치관 전쟁. 이는 그러면 시대정신의 발로일까. 글쎄, 아직은 두고 볼일 같다. 그 분명한 답은 두 주후에나 밝혀질 것이니까.
그건 그렇고, 퓨 보고서는 미국의 개신교 인구는 더욱더 소수화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전 세대와 달리 오늘날의 젊은 세대, 즉 30세 이하 연령층에서 종교와 무관하다는 사람은 30%가 넘는 것으로 밝히면서.
그 미국이 어쩐지 점차 낯선 느낌을 주고 있다. 교회의 공동(空洞)화와 함께 정치도, 경제도, 창조력도 날로 쇠퇴하고 있는 유럽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에서다.
<옥세철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