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되살아났다. 대선후보 1차토론 패배 후 비틀대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차토론에서 반격에 성공했다. 2주 전 공화당의 미트 롬니처럼 완승을 거두진 못했지만 지난번의 무기력한 모습을 던져버린 듯 자신감에 찬 투사로 재충전된 오바마는 두려움 없는 정면공격으로 민주당이 가슴 졸이며 기대했던 리턴 매치를 무사히 치러냈다.
16일 밤 뉴욕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열린 두 번째 토론은 뜨거웠다. 거침없는 강펀치가 작열한 열전이었다. 평소 신중한 두 후보의 ‘매너’는 사라지고 직설적 비난과 싸울 듯 날선 공방을 삼가지 않는 컬러플한 전투였다. “그래도 대통령 후보 토론인데…”라는 체면만 접어둔다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시종 흥미진진한 대결이었다.
결과는 오바마의 판정승 : 롬니도 선전은 했다. 그러나 CNN 여론조사가 46% 대 39%로 오바마의 손을 들어 주었고 진보성향 분석가들은 일제히 오바마의 ‘명쾌한 승리’라고 선언했다. 상당수 보수성향 분석가들 역시 “무승부”라면서도 오바마가 “지난번보다 훨씬 잘했다”는 평가를 덧붙였다. 에너제틱한 오바마는 롬니의 허점을 한 번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팩트’로 무장한 채 빠짐없이 반박해 나갔다.
원색적인 스타일에 비해 주요이슈 ‘경제’에 관련된 새로운 내용은 찾기 힘들었다.
롬니는 자신의 감세정책에 관해 어디서 돈이 생겨 대규모 감세와 적자해소를 동시에 실현시킬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유권자의 의구심을 이번에도 풀어주지 않았고 가장 시급한 과제인 사회복지프로 개혁에 대해선 언급조차 피해간 오바마도 향후 4년의 경제성장을 위한 구체적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바마가 지키지 못한 약속들을 하나하나 상기시킨 롬니는 “내 제안에 대해 의구심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당신에겐 심판을 받아야 할 지난 4년이 있다”고 압박을 가하며 그가 재선되면 힘들었던 “지난 4년을 다시 한 번 겪게 될 것”이라고 유권자들에게 경고했다.
롬니의 허약한 대안을 오바마도 집중 공격했다. 롬니의 5단계 플랜을 부유층만을 위한 1단계 플랜으로 깎아내렸고 구체적 재원 대책 없이 대규모 감세와 적자감축을 장담한 세금플랜은 산술적으로 맞지 않는 ‘주먹구구식 거래’라며 이런 거래는 ‘유능한 투자가’ 롬니도 안할 것이며 “여러분 미국민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오바마도 경고했다.
2차 토론이 1차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수없이 들어온 내용을 뜨거운 공방으로 재연시킨 ‘선수들’의 투혼 때문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토픽들이 폭넓게 다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에너지 정책에서 중국 때리기, 벵가지 영사관 피습, 교육, 총기규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등장한 이슈 중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여성과 이민문제였다.
“Binders full of women” - 이번 토론에서 가장 뜨겁게 떠오른 용어다. 16일 밤 롬니가 이 구절을 말한 지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소셜미디어는 그야말로 ‘폭발’ 상태였다. 해프닝은 “남녀임금 불평등을 어떻게 바로 잡겠느냐”는 한 여성유권자의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오바마는 일하는 싱글맘이었던 어머니를 언급하고 취임 후 첫 서명한 여성동등임금법안을 상기시키며 “여성 문제가 가정 문제이며 경제 문제”라고 자연스럽게 정답을 말했지만 롬니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끝내 동등임금법안에 대한 지지여부는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의 매사추세츠 주지사 시절 여성고위직 등용 에피소드를 끄집어냈다.
고위직 지원자가 모두 남자들이어서 자격 갖춘 여성을 찾아달라고 여성단체에 부탁했더니 “여성들로 가득한 바인더”를 가져왔더란 것이다. 그렇게 여성들을 등용했고 그들이 “저녁밥 짓고 아이들 돌볼 수 있게” 근무시간을 조절해 주었다고 그는 자랑(?)했다. 물론 여성들의 이력서로 가득 찬 바인더란 무해한 의미이지만 많은 여성들에게 순간 모욕감 비슷한 불편한 느낌을 준 “이상한 표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롬니의 바인더’는 트위터를 통해 산불보다 빠르게 번져나갔다. 수많은 롬니바인더 트윗 어카운트가 개설 되면서 온갖 패러디가 잇달았다. “여자들 가득한 바인더? 난 이미 수백개나 있는데”라는 말하는 ‘플레이보이’ 휴 헤프너의 사진, “토론 좀 그만 끝내지, 난 그 바인더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은데”라며 씩 웃는 빌 클린턴의 사진도 올라왔다. 아마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지난 토론부터 강경보수에서 중도로 선회한 롬니의 작전은 이번에도 이민 이슈를 통해 확실하게 드러났다. “영주권은 없지만 이사회의 생산적 일원으로 현재 살고 있는 이민자에 대한 당신의 플랜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긴 답변을 통해 롬니는 불법체류 자녀들에 대한 신분합법화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드림법안의 거부권행사를 천명했다가 ‘군복무의 경우에만’ 허용하자라고 한 발 물러서더니 이번엔 더 물러선 것이다. 한편으론 강경단속으로 기존불체자의 일상을 비참하게 만들어 제 발로 나가게 하자는 자신의 ‘자진추방’ 제안이 대량체포와 추방보다는 훨씬 친절하고 관대한 정책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이 같은 말 바꾸기 전략이 이날 밤 오바마에 의해 조목조목 지적당한 것은 물론이다.
이제 2012년 대선전은 마라톤에서 막바지 스프린트로 바뀌었다. 예측불허의 치열한 접전 속엔 선거 당일까지 전력질주 해야 할 긴장감이 양 진영을 감싸고 있다. 16일 오바마의 반격은 민주당 표밭의 열기를 북돋우는 데는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차 토론이후 승리 가능성을 발견한 공화당의 롬니에 대한 열정을 식히지는 못할 것이다.
선거까지 19일 남은 현재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집계한 전국지지율 평균은 47.4% 대 47%로 롬니가 앞서있고 온라인 예측시장 인트레이드닷컴의 베팅은 64.2%로 오바마가 훨씬 우세하다. 경제 해결사? 중산층 위한 전사? 아직도 마음 못 정한 경합주 부동층 유권자들의 선택에 전국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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