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가 바짝 다가왔다. 그래서 평소에는 정치에 무관심한 듯 보이는 미국인들도 요즘은 정치 얘기, 선거 얘기를 자주 한다.
대의 민주주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정치는 대통령제, 양원제, 양당정치 등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점은 일반국민들의 생활에서 정치나 정부가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이 다른 나라들(특히 한국)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은 1776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1789년이 되어서야 초대 대통령을 선출했다. 물론 그동안 독립전쟁 등으로 대통령을 빨리 선출하지 못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정부의 지도자를 갖는 것이 그렇게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지도자의 이름도 ‘그냥’ 프레지던트 (President)이다. ‘대통령’이라고 번역되는 건 1860년대 초 일본이 미국의 정부형태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이 말을 사용한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이란 말은 너무나 무겁고 거창하고 권위적이고 권력이 철철 넘치는 말 같이 들린다. 반면 ‘President’는 ‘앞에 앉는다’든 뜻의 ‘preside’에서 나온 말로 여러 사람들 ‘앞에 앉아’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크든 작든 회의를 주재하며 단체를 리드하는 지도자를 모두 president라고 부른다. 회사의 사장, 대학교의 총장, 은행장, 동창회장, 각종 협회나 기관의 장 등 모두가 President이다.
1787년에 제정된 미국헌법은 세계최초의 국가적 성문헌법이지만 이는 단지 7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 아주 간결한 헌법이다. 물론 나중에 27개의 수정조항이 첨부되어 원래의 조항보다 많아졌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정치를 크게 만들지 않겠다는 그들의 의도가 보인다.
반면 한국은 1948년 건국이래 아홉 번의 개정을 거쳐 전문과 10장, 130조에 달하는 본문, 그리고 부칙 6조까지 포함하는 ‘방대한’ 헌법을 가지고 있다.
인구 5,000만 남짓의 한국은 국회의원의 수가 300명으로 약 17만명당 한 사람의 의원을 선출하고 있지만, 3억이 넘는 미국은 상하원을 합친 의원의 수가 535 명으로 인구 65만 명당 한 명의 대표자를 선출하고 있다. 몇 사람만 모이면 정치 얘기가 등장하고, 그래서 정치인들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고, 정당의 이름은 너무 자주 바뀌어 어느 게 어느 건지 헷갈릴 정도인 한국의 숨 가쁜 정치 현실에 비하면 미국의 정치와 정부는 너무나 작게 느껴진다.
미국인들은 정치나 정부는 필요하니까 갖추어야 할 것이긴 하지만 그것들이 그렇게 크고 강력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처음 그들이 이 땅에 건너와서 정착할 때도 그랬고, 광활한 서부를 개척할 때도 그랬고, 많은 이민자들이 새로운 삶을 일굴 때도 그랬듯이,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모든 일을 정부의 보호아래 하기보다는 개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정신으로 살아 왔다. 이는 선조들이 이 땅에 건너와 심었던 자유주의 정신과 그 바탕이 되는 개체중심주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미국이 그동안 전기에서 달 착륙,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수많은 노벨상과 아울러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유튜브, 페이스북 등 무수한 발견과 발명과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정부나 그 누구로부터의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않겠다는 자유정신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제 그런 작은 정치, 제한된 정부라는 미국의 이상을 다시 둘러봐야 할 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안보에서부터 세금, 교육, 빈곤, 의료, 환경, 이민, 복지와 소득분배, 총기와 범죄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점점 더 커지고 복잡해지고 있어 정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부가’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를 희망하고, 부모들은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총기규제를 강화하여 자녀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기를 기대할지 모른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정부가’ 어떻게 해서라도 치솟는 개스값을 수그러 뜨려주기를 바라고, 직장이 없는 사람들은 ‘정부가’ 어떻게 해서라도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를 원할지 모른다.
작은 정부, 느슨한 정치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정부가 이것저것을 더 챙기는 정치를 도모할 것인지 미국은 곧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도 이번 선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장석정 일리노이주립대 교수·부학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