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할렘 PS 57 초·중학교 과학교사)
이달 첫 토요일이던 지난 6일에는 한국일보가 매년 주관하는 코리안 퍼레이드가 펼쳐진 날이었다. 화창한 가을날 열린 이날 한국인들의 행진은 뉴욕시에서 거창하고 아름답게 펼쳐졌다. 나 역시도 쌍둥이 딸들과 아침에 서둘러 준비해 한복을 입고 바삐 차를 타고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서 뉴욕시로 건너갔다. 내 딸들은 처음에는 “한복이 불편한데 이걸 입고 어떻게 걸어 다니느냐”고 했지만 “선생님께서 꼭 한복을 입고 오라고 하셨고 엄마도 입을테니 일 년에 두어 번 입는 한복이지만 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리자”고 설득했다. 덕분에 10대에 접어든 쌍둥이 두 딸과 더불어 나 역시도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이날 맨하탄 한복판을 당당하게 누비고 다녔다.
딸들은 다소 어색해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보아라! 이것이 내 나라 한국의 고유하고 아름다운 한복이다. 그리고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 여성”이라고 딸들과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씩씩하게 행진했다.
지난해에는 내가 근무하는 할렘 공립학교 재학생들과 함께 행진했었다. 교사로서 토요일에 학생들을 책임지고 인솔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나는 몸살까지 앓았었다. 그래서 올해는 그냥 쌍둥이 두 딸과 함께 뉴욕한국학교 학부모 자격으로 행진했다. 물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국학교 교사들과 학부모 및 학생들도 함께였다. 지난해 흑인 등 타인종 학생을 이끄는 한국인 교사로 행진했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작년에는 한복도 입지 않았지만 올해는 한복도 입었고 무엇보다 한국학교 학부모로 행진해서 그런지 기분이 참 많이 달랐다.
당일 퍼레이드 참가자 가운데에는 행진이 끝난 뒤 재빨리 옷을 갈아입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하루 종일 한복을 입고 뉴욕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그날만큼은 한복을 입는 일이 참으로 자연스러웠고 편했으며 쌀쌀한 날씨에도 두꺼운 한복 덕분에 춥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한복을 더 자주 입어야겠다고. 이달 말 열리는 핼로윈 때도 한복을 입고 학교에 등교할까 생각 중이다.
행진이 끝난 후에도 한복을 입고 뉴욕시를 누비고 다니던 나를 본 타인종들은 “예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행진에 동참했던 어느 흑인 학생은 “와우(Wow)"하면서 큰 소리로 반갑게 외치기도 했다. 행진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한복을 왜 행사가 끝나자마자 갈아입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늘 말로는 “한류 덕분에 한국이 자랑스러워졌다”면서도 진정한 실천으로 한국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일까? 민족의 자존감과 코리안 아메리칸의 자존감은 어떤 것인가? 타인종과 함께 손잡고 잠시 한복입고 사진 몇 장 찍는 것이 우리의 민족적 자존감인가? 라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자랑스러운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한국어로 이렇게 글을 쓰면서 ‘민족성, 자존감, 자주성’ 등등의 단어가 자유롭게 떠오른다. 겉으로는 한국인 또는 코리안 아메리칸인데도 속으로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다소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자존감 없는 한인들도 뉴욕 일원에 많다.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 이들이 매년 열리는 코리안 퍼레이드를 통해 진심으로 민족의 자존감이 무엇인지를 깨우쳤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행진을 하면서 또 한 가지 깨우친 것은 코리안 아메리칸의 다양성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타인종과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룬 경우에서부터 한국에서 입양돼 타인종 부모 밑에서 훌륭히 성장한 코리안 아메리칸 또는 아메리칸 코리안의 후손들을 비롯해 단지 한국과 한류가 좋아 친구 따라 강남 간 격으로 참여한 타인종 친구들과 한국인 교사를 따라 함께 행진한 타인종 학생에 이르기까지 이날 코리안 퍼레이드에서 만큼은 이들 모두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이날 행진하면서 우리의 민족적 자존감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다양성은 아름다운 것이고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또한 이 아름다움이 한국을 더욱더 자랑스럽고 강한 민족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민족이 한 가지 색깔로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색깔의 실타래로 짜인 한국 민족의 자존감과 코리안 아메리카니즘, 아메리칸 코리아니즘이 아주 돋보였다.
올해 코리안 퍼레이드에서는 특히 한국일보가 더욱더 강하게 느껴졌고 이날을 위해 수고한 한국일보사 직원들과 기자들에게도 감사하고 싶다. 또한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난 자주 한복을 입고 뉴욕시를 누비고 다닐 것이다. 그리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코리안 아메리칸 출신의 교사로서 뉴욕의 어린 생명들을 잘 교육시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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